꿘, 순수, 아주 일부의 이야기

현재진행형의 그 사태에서, 학생들이 ‘외부세력’ 혹은 ‘운동권(소위 꿘)’을 예민하리만치 경계하고 배척하려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만구천 재학생과 21만 이화동문을 나 혼자 대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주 개인적인 의견을 조금이라도 밝혀보자면 이러하다.

첫째로 학생들은 그간 봐왔던 그들의 요란스러우나 실효는 거의 없는, 구시대적 운동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세 영상이 포털 메인에 걸리고, 모 방송사에서 이것을 ‘새로운 시위문화’라고 칭했을만큼 이번 운동의 방법론은 기존의 시위들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삭발하고 텐트치고 굶으며 날짜를 카운트하는 대신, 아이돌의 노래를 떼창하거나 책을 펼쳐놓고 여름 햇볕 아래에서 각자의 공부를 하는 이화인들의 모습에서 나는 ‘이화다움’을 발견한다. 민중가요 가사 한 줄 알지 못해도, 바위처럼을 어떻게 추는지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러니까 시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축제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은 이 운동에서 굳이 ‘투쟁가가 흘러나와야만 지지해주겠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것은 무슨 고약한 심보인가.

둘째로 이화인들이 본관 내에서 자체 투표에 의해서 ‘외부세력’ 혹은 ‘꿘’을 본관에서 퇴거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운동의 대표성에 대한 (특히 외부의) 왜곡과 날조를 염려한 이유였다. 다시 말해 운동의 주체를 대표할 수 없는 극소수의 인원이 제 스스로 언론 앞에 나서기를 자청하고, 대표성을 자임하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꿘들이 평소에 해오던 운동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그들이 각자 사회의 어딘가 영역들에서, 어떤 이슈들을 가지고 싸워나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네임드/프로’ 운동권이 이 운동의 대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화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엿새째 본관에 앉아있는 이화인들은 잘 조직화된 활동가들이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무섭고 두려운 와중에 간신히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쥐어짜내서 본관으로 향한 어리고 여린 벗들이 대다수다. 그런 벗들을 대표한답시고, 최악의 경우엔 마이크 잡을 땐 평단으로 시작해놓고 끝나고 보니 재벌 타도로 결론 맺어서 방향성 상실하게 만드는 그런 짓 할까봐 무섭다는 얘기다.

셋째로 학내에서 교육과 관련한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정치성과 색깔론에 주의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오히려 총장을 비롯한 대학본부, 그리고 언론과 모든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학내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두고 가장 먼저 ‘좌파’, ‘빨갱이’, ‘프로시위꾼’ 같은 딱지를 붙여댄 것은 다름 아닌 총장과 대학본부였다. 시위가 시작된 초기부터 이미 대학은 벌써 몇 년 전에 해산돼 없어진 통진당을 거론하며 시위 학생들을 빨갱이로 취급하고, 이같은 거짓된 정보를 동문들에게 확산시켰다. 기자들을 모아놓은 기자회견장에서 현재의 사태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어떠한 대표성도 지닐 수 없는 작년 총학을 들먹이며 ‘순수한 이화인’ 운운하는 총장의 행태가 학생들로 하여금 과도하다 싶을 만큼 외부의 지원에 대해 오히려 경계하도록 만든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리고 언론 역시도 같은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대체로 이화인들의 이 같은 입장―아주 정치적인 수사로 ‘정치성 배격, 외부세력 개입 금지, 운동권 배제’ 따위로 표현되는―에 극도의 반발감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그 옛날 멀고 먼 시절 8-90년대 학생운동의 호황기를 청춘의 낭만 같은 것으로 포장해놓고 왜 내 추억에 동조하지 않느냐고 분노하는 듯한 느낌도 적지 않다. 그땐 우리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이 양반들아. 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운동권이 싫다는 데 니들이 보태준 거 없잖아? 운동권이 운동해도 안 되는 세상, 뭐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데모꾼이라고 욕만 쳐먹고 곡해당하기 십상인 세상을 만들어놓고, 왜 운동권을 배제하냐고 물으면 그냥 할많하않. 연대가 중요하다는 거 다 아는데, 지금 이렇게 당신들이 싫어할만큼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종북좌파 프레임이 씌워지는 게 학생들 잘못은 아니라는 거다.

혹, 정치성을 배제한다는 말이 죽고 못 살게 거슬려서 ‘너희들이 하는 그 행위도 정치적이다’라면서 훈계질이 하고 싶거들랑 진지하게 양손을 맞잡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래도 그 말이 끝끝내 마음에 남으면, 그냥 마음 속으로만 하기를 바란다. 이화인들은 당신이 단지 두 손 키보드에 얹어 쉽사리 일장연설을 지껄이는 이 시간에도 온 몸으로, 온 존재로 정치적으로 행위하고 있는 주체이다. 당신만한 수준의 정치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이렇게 정치색이 없음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정치적이고, 정치적이기 때문에 더욱 민주적이어야 하는 일임을 이미 이화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충분한 그리고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발 모르면서 까지 말자. 알아서 열심히 으쌰으쌰 하는 데에 초 치지도 말자.

+ 타대학에서 보내오는 각종 지지 성명들이 언론에 쨘! 하고 공개될 타이밍을 잃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지지와 연대의 표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음이 애써준 모든 이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양해되었기를 바란다.

++ 이때다 싶어서 이대가 무슨 프리미엄을 잃기 싫어서 저런다는 둥, 학벌주의, 순혈주의라는 놈들은 평소에 이대생 보면 와 명문대시네요 절대 안 했을 놈들이라는 거 훤히 다 읽힌다. 평소에는 그렇게 이대 까내리고 싶어서 한물 갔다, 하향세다, 인서울 끝자락이다, 안달이 났던 애들이 왜 이제와서 우리보고 기득권 운운하냐. 자아분열 뇌내망상 쩌네.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