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일흔일곱 개 문서를 갈아치운 Ctrl+C/V 질이 끝났다. 2주는 걸린 듯. 이 몰려오는 허망함이란. 근데 왜 Copy는 Ctrl+C인데 Paste는 Ctrl+V일까. Copy 뒤꽁무니 따라가다 어정쩡하게 옆자리로 매겨진 걸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제일 많이 쓰는 좌측 하단 Z-X-C-V 중에 아다리가 맞는 건 C 달랑 하나 뿐인 듯도 하다. 또 하나, 좌측 정렬은 Ctrl+L(eft), 우측 정렬은 Ctrl+R(ight), 근데 중앙 정렬은 Ctrl+E(…?). 대체 뭐가 들어가야 맞는 단어인건지 모르겠다. 왜 이따위 쓸데 없는 고민을 하느냐 하면 뭐 그다지 할 말도 없지만 안 쓰던 워드로 단축키까지 써가면서 카피질을 하려니까 단축키 외우는게 의외로 또 어렵다.
반도의 자랑 아래아한글을 최소 10년 이상 온몸 가득 체화한 이 손가락은 도무지 워드 창 띄워놓고 갈 곳을 못 찾더라. 쓸 수록 느끼는 거지만 워드 놈들은 엑셀을 믿으니 그런건지 테이블 편집이 진짜 고난과 역경의 형극의 가시밭길(…) F5, F5+F5, M, Ctrl+각종 화살표, 기타 등등 이 얼마나 훌륭하고 예쁜 편집에 최적화된 기능들이 많던가(!) 이 글로벌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재 같으니라고. 아래아한글 말고는 아무것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득그득한 데에서만 일하다가 아래아한글 같은 건 켤 일도 없는 곳에서 문서작업 하자니 의외로 답답한 일 천지다. 개답답.
그런 의미로 또 한번 곱씹어봐도 나는 내가 여기 어쩌다가 앉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어필이 된 건가, 자격증을 10년 전에 따서 그런가, 영어 점수도 없는데, 나는 왜 여기 있나. 얼마 전엔 서점에서 지나가다 컴퓨터활용능력 1급 책을 구경했는데, 가격만 괜찮으면 그냥 한번 쳐 볼 의향도 있었고, 딴 건 다 1급인데 저거만 아니라서, 근데 너무 비쌌다. 그 옛날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두꺼워지고 말도 안 되게 비싸진 것 같다. 요즘 수험생들은 그 두꺼운 책 사다가 시험 전에 다 보고 들어가긴 하는건가. 10년 사이에 대한상의에 무슨 으마으마한 일이라도 일어났던 거냐. 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