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2. 프라이드

프라이드
프라이드(!!)

그렇다. 이 프라이드를 말하자는 건 아니고. 길게 말할 거리도 아니지만 하여간 아침 출근 길에 문득 든 생각―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가 능력 혹은 실력에 관한 프라이드 둘째가 자리에 대한 프라이드가 되겠다. 이렇게 한 줄만 적어놔도 무슨 말인지는 다들 알테지. 사실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을리는 없다. 능력 혹은 실력이 전혀 없이는 소위 ‘프라이드’ 따위를 가질만한 자리에 있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다. 능력도 실력도 아무 것도 없으나 자리는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많이 있다.

그네들에겐 오로지 그것(예컨대 자기가 깔고앉은 의자가 자기 사무실 안에서 몇 번째로 좋고 비싼 의자인가라던지, 내가 출입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안쪽 자리에 앉았는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만이 중요하다. 이렇게 적고 나니 ‘자리’라는 단어는 참 훌륭한 말이로구나. 상석이네 말석이네 하는 물리적인 위치는 물론이고 동시에 직위나 직급 같은 그럴싸한 명칭들 그 둘 다를 표현하는데 이러쿵 해도 맞고 저러쿵 갖다 붙여도 틀린 말이 아니로군.

근데 뭐 어쨌든. 제 스스로의 능력이 근간이 된 프라이드는, 보기에 좀 눈꼴시렵고 재수는 한참 없을 지언정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이다. 까짓 뭐 잘난 놈이 저 잘났다고 자랑 좀 하는 걸 어찌하오리까. 근데 자리만 갖고 잘난 놈은 영, 영 아니다. 그러면 아니 되오. 헬조센 한정 금수저를 물고 난 놈이야 거저 주어지는 자리가 숱하게 많기도 하겠지만 그런 놈이 세상에 몇이나 된단 말이냐. 능력은 일천하나 어영부영 주어진 자리에 그저 목 빳빳하게 남 놓고 훈장질이나 하는 종자는 사실 그 깔고앉은 밑의 의자가 언제 어디로 날라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냥 잊은 것 뿐.

말이 나와서 적는 것인데, 근래에 (무슨 차이나타운 관광단지 만들듯이 리모델링을 해놔서 아주 꼴도 보기 싫은!) 종로통 옛 피맛골 근방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헬조센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헬조센 헬조센 시발 헬조센이 언제적부터 쓰던 말인데(나는 최소 대입 전에 이 단어를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을 끊어야지…. 대강 찾아보니 2009년 즈음이 첫 사용이란다. 아니면 말고.) 왜 이제와 갑자기 지랄발광들을 해가면서 요즘 젊은 것들이 조국을 헬조센이라고 부른다 카더라 하는 뉴스들을 연일 쏟아내느냐 이 시대에 뒤떨어진 기레기 새끼들 하고 욕을 한 바가지 한 적이 있다.

거 무슨 하루이틀 쓰인 말도 아닌데 넷상에서 이미 알 놈은 다 알고 쓸 놈도 다 쓰던 말을 느닷없이 신문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박아놓고, 페이스북에는 카드뉴스를 뿌려대고, 방송에서는 저녁뉴스에 그런 걸 세상 큰일 났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더럽고 치사한 놈들. 늬들이 그렇게 요란뻑적지근하게 보도하기 훨씬 전부터도 조선땅은 헬조센이였고 어린 놈들은 나를 차라리 죽여라 하고 근근 살고 있었다 이 말이다. 그런데 왜 이제와 갑자기 헬조센을 들먹이고 금수저를 거론하냐고. 다들 단체로 어디 가서 고해성사라도 하고 죄사함 받고 보니 아 세상이 이렇게 더럽고 엿같은 줄 나는 참말 몰랐소 이러는 거란 말이냐.

아, 글이 또 산으로 왔는데 길고 긴 점심시간이 끝이 났다. 그러니 일기도 끝.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