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양동 조모님의 생신이셨다. 간만에 다들 모여앉아 케익이며 과일을 까먹다 말고 조부께서 입대가 코앞인 김군에게 안수기도를 시작하는 찰나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숨도 못 쉬며 이름을 불렀다. 아프신가 해서 마음이 철렁. 전화를 우선 끊고 돌아서 바로 집에 가자 했다. 여차저차한 경로를 거쳐 집엘 도착. 할머니의 (유사?) 호흡 곤란 증세의 원인은 지난 주 저녁 엄마를 안방 밖으로 나오질 못하게 했던 그 “미친 여자”였다.
결국 갔다. 엄마와 할머니가 김군을 뒤에 세우고 갔다. 한 시간이 훌쩍 더 지나 돌아왔다.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돌아온 얼굴들은 패잔병의 그것도, 그렇다고 승전보를 울리는 군인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질리어버린 표정.
원인이랄 게 별로 없었다. 그냥 되도 않는 소문들, 루머, 스캔들의 확산과 재확산. 그렇게 쌓인 족히 몇년 묵은 감정의 앙금. 얼굴을 보네 안 보네 당신 있는 곳에는 가지 않으리 어쩌니 하는. 상식적인 사람들 사이에선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소모적 논쟁.
잘 늙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그런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지성을 잃지 않고 지혜롭게 늙은 이들이 가진 그 위엄이란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이던가. 생신 맞은 조모를 두고 한 조부의 기도를 들으며 느꼈던 나이듦에 대한 것과는 또 다른 늙음에 대한 발견. 늙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