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이런 곡이 존재한단 말인가.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봐도 되겠다. 그리고 스쳐가는 지난 날들…! 나는 아마 이 노래 하나에 웃기 위해 16년에도, 18년에도, 19년에도 방법론을 배운 걸지도 몰라.
매번 그렇지만 녹취를 풀고 있으면 사람들은 참 많은 뭐, 이제(인제, 인자, 이자), 어, 에, 네, 좀 등을 한다.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서. 한 문장에도 쉴 새 없이 여러 번을. 거의 띄어쓰기 수준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받아쓰다 보면 이게 어떨 때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떨 때는 절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결국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시 들으면서 최대한 또-옥같게 쓰려고 하는데, 그러고 있다보면 좀 어지러워질 때가 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나와버려서 B를 놀라게 했다. 보내고 나서는 J가 작년 생일선물로 주었고, 내내 묵혀두었다가 몇 주 전엔가 깠던 포르투와인에 얼음을 타서 마셨다. 그 전에 맥주 500짜리를 1.5캔 정도 마신 뒤였다. 고요한 집에서 에어팟 끼고 김동률 노래 들으면서 술 마시고 카톡하다 잠들었다. 아침에 눈 떠 핸드폰 알람을 보면서, 근래 약 먹기를 게을리 해서 그런가, 그렇게 핑계를 삼기로 했다. 내가 (아직) 환자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면서.
운 좋게도 한글 가르치면서 고3 가르칠 때와 같게 받는 일자리가 생겼다. 지난 토요일 시흥으로 인터뷰 다녀오는 길 왕복 택시비 5.0 탕진하면서, 이러라고 만들어주신 자리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다(진짜 진심으로). 돈 없다고 돈 번다고 핑계 대면서 공부 안 하는 거 그만 좀 하라는 그분 뜻인가봉가. 엄마와 통화하다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임모의 글이 생각났고, B에게 몇 편의 링크를 보냈다. 양귀자의 한계령을 떠올리면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들었다. 내가 살며 처음 들었던 한계령은 (의외로) 임형주였었다.
B가 타임트리에 이어 벤토이를 깔면서 같이 어플을 보다가, 어지간해선 들여다보지 않던 월 지출/수입을 확인했다. 이번 달에 세금환급 버프가 강하게 있기는 했다지만 내가 이렇게나 한달 수입이 많다니 싶어 행복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다음달(에는 학원 강의시급이 더 올라가고, 강의시수도 늘어난다)의 월급을 미리 정산해보았다. 환급받을 세금도 없는데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꽤 기부니가 조크든요.
이것밖에 안 지났나 싶게 빠르게 스며든다. 모 어플에서 매일같이 던지는 질문들을 대답한지 스물닷새째인데, 이 질문에 답을 고민하는 시간이 괜히 좋다. 쓰였던 답들이 맥락 없이 떠올라 다시 들여다볼 때가 가끔 있다. 달지 않게 달짝지근. 달짝지근이라는 단어는 입에서는 매끄러운데 활자로 옮길 때면 늘 헷갈린다. 달착지근?달짝치근?달착찌근?달짝지근? 뭐 대충 이런 느낌. ‘달달하다’는 의외로 국어사전에 들어있지 않다. 우리말샘 사전에는 ‘달다’의 방언(강원, 경상, 충북)이라고 나온다. 달지 않고 달달하게, 라고 쓰려다 다시 고민해 달짝지근을 떠올리는 중에 찾아보았다. B가 ‘뭔가 얘기하다가 모를 때 바로바로 검색하기’를 내 버릇으로 꼽았던데. 이게 버릇의 영역으로 보였다는 게 어딘가 웃기다.
뭐하다 그랬더라, 윤지당 임씨가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가풍, 이른 사별, 무자녀, 시댁 내 지위 등)에서 출발해서, 임지당유고 국역이 있나 찾다가, 임윤지당 평전이 작년에 나온 걸 알았고, 왜 몰랐을까 잠시 갸우뚱했고(왠지 나왔을 때는 알았을 것도 같다), 오늘 연구실서 논문 몇 편을 찾아 읽었다. 김영민의 글이 좋아 좀 찾아보았더니 정치학과 그 김영민 교수였다. 꽤나 초기의 논문이었던데, 이런 쪽에서 시작했을 줄이야. 의외로 의외였다.
글을 쓰다 말고 남은 콩나물과 팽이버섯을 다 때려넣고 라면을 끓여 먹고 왔다. 청양고추 하나를 잘라넣고 냉동실에 있던 대파 한 토막도 잘라넣었다. 방금 막 B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