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3. 벌써 2년

생각만 여러 번 하기를 반복, 쓰지 못한 말들이 많았던 날들이다.

할머니가 보고싶다. 2년이 꼬박 지났다. 그날 새벽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전화를 받고 간신히 벽에 기댔다가 주저앉아 끅끅 울다가, 옷 다 챙겨입고 출발까지 하려다가, 말리는 소리에 오지도 않는 잠을 다시 청했다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정말로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셋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야하나 싶어 수서쪽 티켓을 알아보다가, 곧 빈소가 차려진다 해서 서울역으로 차를 돌리고, 하차역에 도착해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 와중에 기말 과제 걱정에 노트북을 챙겼다 아이고 대단한 년. (부의금 정산에 아주 유용히 썼다.) 옷가지 몇 벌 못 챙겨 J가 늦은 밤 직접 차를 끌고 내려올 때 챙겨다 주었었다. 사흘 내내 엄빠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다른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그리 번잡스럽지 않은 빈소를 지키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입관을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시간엔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이를 악물고 말 없이 울었다. 까맣게 바짝 말라버린 몸. 이미 생기를 잃었다고는 해도, 너무도 야위어버려, 차마 손을 대기도 전에 마음이 무너져버리던.

아침 출근길 택시에서 캘린더를 보며 잠시 생각했더랬다. 그러곤 생각 밖에 치웠다 여기고는 하루종일 싸르르 아리고 아프고 힘들고. 나름 멀리(?) 나가 맛있는 거 먹겠다고, 비싼 저녁 얻어 먹어놓고, 채 한 병 넘기지도 못할 맥주에 취해, 졸다가 버스에서 후다닥 내리고, 집에 돌아와선 그대로 뻗어버려 서너 시간이나 잤을까. 눈 뜨고 나서야 다시 깨달았다. 나 오늘 그래서 흐물흐물했구나. 그런 거였구나.

연구소 일로 이래저래 당황하며 하루가 갔다. 고기 앞에 놓고 실컷 욕하다가 마주앉은 B에게 잠시 미안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낸들 무엇하랴.

회의만 마치고 바삐 돌아올 요량으로 렌즈도 끼지 않고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했다. 아침 택시에 내리는데 며칠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행사 현수막을 발견. 회의하는 동안 행사 내용 찾아보고, 회의 마치자마자 오전 세션 중간에 들어갔다. 세 번째 발제자가 발제 중이었고 뒤로 세 명의 논평이 이어졌다. 점심은 따로 혼자. 커피도 따로 혼자 테이크아웃. 연구실에 당연히 원데이렌즈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서 좀 짜증이 났다. 안경 쓴 채로 가서 앉아있자니 해봐야 단 몇 미터 거리일 연단만 보아도 시야가 좁은 게 거슬려 참을 수가 없었다. 오후 세션엔 지도쌤이 첫 발제라 또 꽤 오랜만에 뵈었다. 도통 먼저 연락은 하지 않으시고, 나또한 도통 연락을 드리지 않고 있어, 이렇게 행사에서 만나면 마치 몰래 온 손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마치고 그냥 나왔다가 데드라인 자체 생성할 겸 들어가 다시 인사드렸는데 결론은 메일 보내라였다. 좀 썼니? 물으셔서 좀 많이 찔렸다. 좀 쓰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오늘 문득 내가 논문이라는 걸 쓸 줄 아는 (아니 쓸 수 있는) 사람인 걸까 의심스러웠다. 글이라는 거 어떻게 쓰는 거더라…? 연구라는 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 상사님 인터뷰 하면서도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었다. 상사님 34년생. 토요일엔 임 대령님 만날 예정인데, 이쪽은 30년생. 우리 할머니 31년생. 이 상사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싫다고 손사레를 치면서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라셨다. 할머니 근데 할머니라고 부르면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나는 걸요. 할머니 빼고 죄다 어르신 선생님만 하는 게 좋겠는 건 전부 할머니 때문이야. 

씨즌이 돼놔서 그렇겠지만 어쨌든 이달 들어 언론에서 종종 이야기들이 나온다. 목요일 무렵엔 피크를 이루겠지. 보면서 내내 에이씨 빨리 할 걸, 왜 작년에 바로바로 안 했을까, 그러면서 후회 아닌 후회를 한다. 게을렀던 동안에는 이 정도라도 좀 게으르자, 그래야 나도 살지, 그랬는데. 이제와 보니 내내 죄를 짓고 있었던 기분. 2019년 5월말 기준 1,504명이 2020년 5월말 1,434명이 됐다. 이대로라면 논문 다 써서 발표할 즈음엔 다시 1,3nn이 되어 있겠지 생각하면 마음 너무 무겁고 또 무섭다. 이 상사님 자부께서 “왜 이제 와서야 갑자기”라며 거듭 말씀하셨던 게 (당연히 아닌데) 괜히 나에게 하는 타박같고 그렇더라. 작년에만 찾아봤어도 좀 덜 죄송했을까. 부질 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렇다. 

안 모 기자 전화 받으며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번 느끼는데도 매번 새삼스럽게 세상이 참 좁다. 얼마 전엔 아주 오랜만에 좐을 다시 만났다. 원래도 아저씨였지만 한층 더 아저씨가 돼있었고, 그때만 해도 뭔 장은 안 하고 있었는데 이제 메인프로 팀장한 지가 1년 4개월이래서 약간 소름이었다. 그치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무려 7년 전이네. 오, 주여. 오, 세상에.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좁기는 왜 이리 좁고 빠르긴 또 어쩌자고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요.

침대에 누워 한 시간 꺼짐 예약 걸었던 에어컨이 꺼졌다. 더 많은 말들이 더 많이 쏟아지기 전에 어서 자야지. 내일을 살아야지. 아침엔 반가운 손이 찾아올 테니.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