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0. 말의 아름다움

세 권의 책을 샀다. 택배를 받은 엊그제 밤, 『나의 할머니에게』를 마쳤고, 어제는 집에서 카페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끝내고, 늦은 밤에는 (주간문동에서 이미 읽은) 『시선으로부터』를 다시 시작했다. 새삼 여러번 소리내서 읽다보면 이상하리만치 생경하거나 혹은 무섭도록 사무치는 말들이 있다. 온갖 문장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 “극진하다” / “황폐의 극치였다.” / “몹시” / “외따로” / “창궐하다” / “勿論” / “사무치다” / “도탑다” / “20세기의 온갖 참혹함에서 살아남아, 여러 언어를 마구 섞어 생각하는 작고 완고한 머리” / “그 시대 여자들은 다른 여자가 귀엽다 싶으면 김치를 보냈다고.” / “온 국민이 내가 친딸 아닌 거 잊지 않는데 혼자 맨날 착각했어. 엄마가 착각할 때마다 좋았어.” / “매개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세계가 가능할까. 무한히 다채로운 힘을 조직할 수 있는 다른 질서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도 3·1 운동 속 그들과 마찬가지. 매개의 변증법 너머를 개척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 “여전히 거의 대부분이 인간이고자 하는 이 기적.” / “영원히 존재하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삭제되고 싶다. 플러그를 뽑는 것처럼 기억도 전부 가져가고 싶다.” / “언론인 다 죽었나? 죽였나? ……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 “우리는 하나의 전례를 만들어 놓은 거야. 우리는 하나의 환상을 그려 놓은 거다. 이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워지지 않겠지. ……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전례만은 지워지지 않을 거다.”

언젠가 다른 글에 적겠지 싶어 쓰지 않은 것이 많다. 중구난방으로 옮겨 적어 중복이 생길 수도 있겠다. 요즘 더욱 예쁜 말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예쁠 일 (거의) 없는 말들에 둘러싸여 지낸지 너무 오래라 그런 걸까.


20대 마지막 생일ㅡ사실 이게 뭐라고 자꾸 곱씹고 있나 싶기는 하지만ㅡ이 지나갔다. 예상치도 못한 사람들에게서까지 예상 외로 많은 축하와 선물들이 전해졌다. 작년 나를 잘 재우려던 H선배는 이번엔 잘 씻기는 쪽을 택했고,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제일 먼저 연락해와 선물을 고르라던 O는 내가 직접 고른 캔들을, U는 본인 대신 운동 잘 하라며 레깅스(!)를, 멀리서 돌아와서도 여전히 만나지 못한 J는 나의 ‘꿈/꿈’을 위한 필로우 미스트와 캔들을, 귀여운 J. C.는 늙은이 건강 걱정한다며 비타민D를, MJ는 (사진에서는 분명히 귀여워보였다던) 어마무시한 간식상자를 보내왔다. T는 자기가 먹고 싶으니 대신 너라도 먹으라며 공차, M은 뿌링클, X는 뚜레쥬르, 뚜기는 배라31, 홍아저씨와 함은 스벅과 함께였다. 그 뒤로도 예상 밖의 선물로 K로부터 또(!) 캔들 하나를, 그리고 정말로 의외의 이에게서는 립스틱을 받았다. 그리고 B는, 내 향수를 바꾸어 놓았다. 베푸는 것 없이 이렇게나 잘도 받고 다니는 인생이다. 이제 내 장래희망 은혜 갚는 까치. 


가까운 벗들 몇몇부터 조금씩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별 수 없이 듣는 이들을 놀래키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가끔은 자란 건가 싶고, 가끔은 닳은 건가 싶고, 가끔은 늙은 건가 싶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들은 오래 머금지 않고 찬찬히 흘려 보낸다. 공유된 캘린더를 채우는 빡빡한 목록들을 보면서는 가끔 웃는다. 서로가 서로를 몹시 귀여워하는데, 서로 그러고 있는 것마저도 귀여울 지경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밀도가 꽤 높으면서도, 자주 아쉬워한다. 많은 것들이 새삼스럽다.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로 이유없이 가서 앉아있는 버릇을 다시 좀 들여야 할 텐데. 조금씩 조바심이 돌아오는 것도 같다.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