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2. 시이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이작! ― 같은 이 느낌 몰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의심하지 않는 까닭은, 함께인 동안 다른 것들을 자꾸만 잊는 나를 깨달았기 때문. 뭐 언제는 내가 그렇게 잘 재고 잘 따지는 사람이었던 적이나 있던가. 아니 오히려 이 정도면 가장 오랫동안 곱씹고 머뭇거린 편에 속할 지도. 한 줌 온기로도 한 시절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오래 끌어온 것이 드디어 끝났다. 열 네 번 갔고 544,200 들었네. 어제 서류 만들었다. 지긋지긋해서 그만 좀 보고싶네 이제. (방금 막 Shift에 Alt 누르면 키보드 전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한/영 전환 말고, 불어독어 가끔 어쩌다 튀어 나오는 건가 했는데 이거였군? 블로그 고전편집기 가운데 정렬이 Shift+Alt+J라서 종종 그랬던 건가 보다.) 이제 좀 쉬었다가 가을께에 다시 본다.

눈 안 뜨고 하염없이 자서 줌 안 들어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길 기대한)다. 어제는 중간채점 결과 입력했다. 나름 단호하게, 그러면서도 어쨌거나 점수는 되는 대로 주려는 선생님의 노고가 돋보이는 채점의 흔적. 5를 어찌나 자유분방하게 쓰시던지 S 뺨치게 아름다운 곡선을 지니었다. 내 글씨는 참 정직해서 다행이야(내생각).

일전에 김양선(2002). “증언의 양식, 생존·성장의 서사―박완서의 전쟁 재현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15. 읽고도 한번 생각해두었던 것이, 이번에 역박 전시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보면서 다시 생각나서, 드디 어제 박완서 책을 좀 샀다.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리고 겸사 눈에 띈 『너와 나의 5·18』까지. (이제 보니 크롬 특수문자 입력 오류도 해결됐네) 알라딘 중고매장서 세 권 합쳐 13,500. 그 산 정말 거기에는 전 주인의 보딩패스가 둘이나 들어있고, 엄마의 말뚝에는 구매일자와 도장이 선명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전시 재미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관람인원 제한하고 관람시간도 묶어놨던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오히려 사람이 몰리는 느낌. 평일 낮에 가면 전시장 안에 두어 팀이나 있을까 말까 할 때도 많고 다른 관람객이랑 동선이 겹치는 경우도 잘 없는데 이걸 같은 시간에 시작 땡! 하고 주루룩 집어넣으니 오히려 병목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게 뭐 순서 거꾸로 뒤죽박죽 다니며 볼만한 전시도 아니고. 여하간 전시 이후로 예전에 읽다가 멈추었던 『3월 1일의 밤』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 다음으로 박완서, 그 다음으로 5.18을 보면 얼추 되겠다. 공부할 생각은 전연 없는 계획이로군.

SBS스페셜 <그녀의 이름은> 아주 잘 만들었다. 마지막 이름 하나하나씩 부르는 장면 많이 아리다. 사진 속 숱한 ‘그녀’들 다 어디로 갔는가, 벌써 가고 없는가. 월요일 오가는 짧은 동선에 열심히 보았다.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보다 이런 것들이 더 무겁게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된다.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보이게 된다는 것, 보지 않던 사람들이 보게 만든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기껏 프로그램 열심히 짜놓고 노는 게 즐거워 요며칠 운동 안 했다. 역시 인간 참 정직하고 간사하다. 선견지명과 철저한 자기인식―내내 그 빛 잃지 마소서.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