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해서. 세상이 변하는 중이어서, 예민한 사람들의 말이, 불편한 사람들의 용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세상이 되어서, 한편 다행이면서도 그보다 더 자주 힘에 겹고 분노에 겨워한다. 불과 몇 년 전, 아니 몇 달 전만 해도 유야무야 뭉개고 넘어가졌을 일들이 이제는 그렇지가 않아서 여기저기서 터지고 솟아오르고 튀어나오고 하는 걸 보고있자니 별 수 없이 한 켠이 답답하다.
오랜만에 오프라인 회의를 했다. 오랜만에 다같이 식사도 했다. 앉은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이어 마셨고, 사무실 돌아와 어영부영 하다가 산보 나갔다. 밀크티 아닌 밀크티를 마시면서 천천히 걸었고, 잠시 앉아 광합성을 오래 하다가, 다시 일어나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한 시간 반쯤 놀고 들어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여섯 시가 지나길 기다리고 있다. 혼자 남으면 컵반 먹고 커피 타고 브금 켜고 뭐든 읽을 것이다. 어제 느닷없이 부르주아마냥 집으로 커피 배달받아 마셨다. 난데없이 받은 선물이었는데, 배보다 큰 배꼽으로 더치 원액도 함께 받았다. 그러고보니 컵반 먹고 커피 탈 게 아니라 집에 가서 그걸 마셔야 하나.
바람이 꽤 세게 부는 것만 빼고는 아주 좋은 날이 이어진다. 잔잔한 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 나른해지는 그런 온기가 햇살을 타고 내린다. 이런 날엔 노상음주가 제격인데 그러기엔 너무도 척박한 시절이다.
며칠째 깨작깨작 엔드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넣고 있다. 이럴 거였으면 1학기에 건드렸을 때 진즉 제대로 할 걸 그랬어. 이제와서 5학기치 하려니 좀 까마득하다. J가 이번 학기 공부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좀 부럽다. 동학이 있다는 기분 같은 건 뭘까. 마음이 잘 먹어지질 않는다. 서늘한 감촉으로 포근한 이불 덮고 누워 쉬고 싶다. 요즘 이불 밑에서는 따뜻한 무언가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늘이 맑아 산세에 드리운 그림자가 선명하다. 해가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