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은 한자를 대체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다. 한자를 ‘더 잘’ 읽고 쓰고 가르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 양반도 한글을 열씨미 배웠다. 그럼에도 실학자들조차도 한글을 제1문자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 연산군은 한글을 탄압하기 위해 한글을 탄압한 것이 아니다(…!)
- 동국정운은 한자음을 기록한 ‘운서’이다. 조선식 한자음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드높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 한글이 네모네모 고먐미 모양인 것은 한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환빠 같은 것을 소개하다니…?(충격과 공포)
- 세종의 맞춤법과 집현전 학사들의 맞춤법은 다르다. 세종은 형태주의, 집현전은 현실주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현실론이 이겼다.
- 이 대립구도는 근대에 이르러 형태주의를 주장한 주시경 이하 조선어학회 vs. 음소주의 표기를 주장한 박승빈 이하 정음파의 갈등으로 똑같이 이어진다.
- 첫 판에는 조선어학회가 이긴다. 그런데 해방 이후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태클을 걸어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결국은 한글학회(조선어학회의 후신)가 이긴다.
- 모아쓰기 대신 풀어쓰기를 하자는 논의는 ‘서구의 서사 규범’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1953년 국어심의회 제9차 회의에서 풀어쓰기가 이긴다. 그러나 역시 현실의 저항에 부딪혀 도루묵이 된다. (다행이다.)
- 언문은 보통명사, 정음, 훈민정음은 고유명사이다. ‘한글’은 ‘한나라말’, ‘한나라글’에서 왔다. 하지만 큰 나랏말, 하나의 나랏말, 유일한 글, 위대한 글, 하나뿐인 위대한 글 같은 뜻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름다운 왜곡(…)이라는데,
국뽕 만만세다.
얇지 않은데 금방 읽는다. 꼬매들한테 해줄 말이 좀 더 늘었다. 아가들아 문법은 이렇게 재미진 것이란다(헛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