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마지막 글이 11월이라니. 12월이 다 지나가버렸다니. 1월도 벌써 이만큼 흘렀다니. 내 나이가 벌써 이만치 됐다니. 아이고 끔찍허다. 체감상 어제, 그러니까 날짜로는 엊그제 목요일에 신년하례식 겸 오티를 다녀왔다. 오티를 하는 동안에 또 다른 오티 공지 메일을 받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하나, 순간 고민이 좀 됐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답장을 하지 못했다. 메일을 켜고 답장 버튼을 누르고 딱 세 줄을 적어놓고 멈추었다. 나머지는 월요일에 생각해야겠다. 신입생은 여덟 명이 왔다. 나 포함. 생각보다 들쑥날쑥한 전공이 몇 있다. 나이는 위아래로 고르게 보인다. 95년생 14학번 미필 남벗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D의 나이와 같은 동기생이라니. 세상 모를 일이다. 88쯤 되는 모씨는 하례식 테이블에서 ‘만학도’를 열심히 강조했는데, 교수님이 88에 최고령은 택도 없다며 부정했다. 웃겼다. 신기한 어필이다. 떡국은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았는데, 애초에 낮 열두시는 내가 일어나있을 시간이 아닌 관계로, 수저를 들고도 먹는둥 마는둥 했다. 원 뭐가 넘어가야 말이지. 자리도 편치 않고, 먹다 말고 자기소개도 하라고 해서 어버버 했다. MOU 출근 첫 날 중식당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주저앉았더니 ‘너 운동했지’ 하던 소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참 많이 변했다. 뽜이팅도 없고, 목소리에 힘도 잘 주지 않는다. 조곤조곤한 코스프레를 한다. 오래는 못 가지만. 여하간 더 이상 ‘씩씩한 척’은 잘 하지 않는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지내버릇하니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식이 끝나고는 A가 먼저 와서 인사를 해주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눈이 딱 마주쳤었다. “어쩌다 이런 길을…… 작년에 제가 편해보이셨어요?”라고 해서 웃었다. 그럴리가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놓인다. 무슨 사이랄 것도 없지만서도. 그렇고 그렇다. 시간이 뜬다고 모임을 먼저 했다. 엄청 많은 교수들의 이름이 오가고, 강의평이 오가고, 과제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교바교, 사바사는 어디에서나 진리다. 계속 갖고 있던 무서움이 배가됐다. 집에 가면 당장 책을 펴야할 것만 같은 압박감. 하지만 펴지 않았지. 연구실 구경도 했다. 16동도 보고, 220동도 봤다. 아무래도 난 따뜻한 게 좋다. 5분쯤은 걸어줘야 햇볕이라도 좀 보겠지. 그리고 220동이 더 따뜻해보인다. 게다가 어차피 16동에는 넣어주지도 않을 성 싶다. 그 뒤엔 인권교육(성폭력예방교육)을 받았다. 전문위원님이 숨 넘어갈 것 같은 톤으로 1시간을 넘게 강의하셨다. 세상이 조금 좋아졌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정말 좋아졌는지는 본진에 들어가봐야 알테지. 마지막으로 OT를 하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5명이 남았다. 장소는 미스리보쌈. 점심도 시원찮았는데 막상 먹으려니 저녁도 속에 받질 않았다. 쓰레기 같은 몸뚱이! 대체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 같이 사렸다. 더 없이 깔끔하게 밥만 먹고 흩어졌다. L회장님은 퐁당퐁당이라고 전이 안 친했으니 올해는 괜찮겠지, 했는데 과연-싶었다. 그리고 모씨가 뻘소리를 했다. ‘뭐라는거야’ 하고 싶었지만 역시 이것도 사렸다. 그라믄 안 돼. 퇴근시간 지하철은 아주 주옥 같아서, 서점을 들를까 하다가 집어치우고 그냥 귀가했다. ㅊㄹㄹ를 찍고 버스로 환승했다. 오자마자 뻗었고, 새벽 즈음 깼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라면을 한 사발 끓여먹고, 메일을 열어 엄마 과제를 다듬었다. 다듬다듬. 손이 시려웠다. 침대를 옮기고 난 후로 방이 요상스레 더 춥다. 웃풍 막을 무언가가 없어서 그런가 싶다. 천장 다시 붙이는 날 벽에도 발라버릴까 싶다. 이참에 미니테이블도 살까.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텐데, 가망이 영 없을 뿐이다. 잘 버틸 수 있을까. 전부 견줄 수는 없겠지만, 징용 혹은 징병 가기 전 날짜 받아두고 기다리는 사람 같다. 전장이 될 ‘그곳’은 춥고 멀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길에 마치 요새처럼 숨어있는 소왕국이나 공국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진 힘으로는 제국 못지 않으려나. 나는 열린 공간이 좋은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