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1. 마소가 마소할 뻔

새로 산 노트북이 두 달도 안 되어 사망의 골짜기를 다녀왔다. 세미나 하는데 귀에 아무 것도 안 들어오고 과제고 발제고 세미나고 나발이고 거의 당장 뛰쳐나가서 소주로 나발을 혹은 나발로 소주를 불 뻔했다. 어찌어찌 죽지는 않고 살았지만, 이러다 정녕 죽는 날이 온다면 아마 분노를… 분노를 금치 못하리라…. 잠깐이나마 2월 23일 새벽의 나년을 처단하고 싶었다. 마소가 그럴 줄이야! 마소가 그럴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말이지!! 배신의 정치!!!

블로그에 무언가를 적지 않은지 오래됐다. 많지 않지만 글을 깨작깨작 써야만 하는 시기가 오니, 다른 글들은 잘 보지도, 쓰지도 않게 된다. 읽는 것도 거기서 거기일 때가 많다. 사실 거기서 거기인 것도 다 읽지를 못해 아등바등한다. 중간도 안 지나갔는데 쫓겨다니는 기분이다. 이렇게 시간이 빨랐던가. 세미나가 있는 날엔 여지없이 20시간 이상의 강행군이 필요하고, 없는 날엔 보상 비슷한 무언가로 열 시간씩 넘게 잠을 자댄다. 업다운이 심하다보니 몸뚱이가 하루가 다르게 썩어간다. 나날이 체감하는 지경이다. 일생에 없던 힐링카페에 마사지샵까지 종횡으로 가보았다. 역시 돈을 쓰면 좋다.

근무를 줄인다고 줄이고 있었는데, 왜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도리어 늘었다. 과외가 둘인데 하루에 다 때려넣어 일 8시간 과외를 한다. 한 시간 텀에는 종종종종 지하철을 타고 움직인다. 종종종종. 그나마 끝나는 시간엔 다행히 픽업을 받을 때가 많다.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지하철에서 어지간히 잤을 터이다. 그러곤 습관이라도 되는 마냥 ㅁㄱ에서 내려 택시를 잡겠지, 그때처럼. 학원도 하루를 줄인다고 한 곳을 그만뒀는데, 남은 한 곳이 다시 이틀이 됐다. 시험보는 아가들도 많아지고, 역대급으로 인원도 많다. 열 명 한 자리에 때려넣고 수업 하다보면 그 옛날 ㅈㄴ사거리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도 한데, 이제는 나이가 더 들어 그런가, 그냥 또 그만큼은 아니고… 하면서 그냥 가게 된다.

경희궁의 J군은 어느새 어린이 말고 청소년다운 느낌이 생겼다. 고작 넉 달만에 다시 본 건데, 많이 자라 있었다. 어린이는 쑥쑥 자란다. 어린이라는 말에 비하면, 청소년이라는 단어는 너무 입에 붙질 않는다. 어린이는 어린인데, 청소년은 쓸모 없이 청하고 소년하다. 다른 말은 없나. 여하간 어른 될 준비를 하네, 싶었다. 이제 막 시작이기는 해도. 자신이 좀 있어도 될텐데, 하는 건 늘 안타깝다. 내가 본 중에 너만큼 착하고 열심인 어린이도 잘 없어, 하는 말을 꽤 많이 했는데도. 항상 ‘놀았다’ 아니면 ‘안 했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지낸다. 부모 영향이 클 테다. 아쉽다. 그런 말 들어야 할 머저리들은 딴 데에 훨씬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S의 중삼들을 모다놓고 그런 얘기를 했다. 까놓고 너네 서울 시내 일반고에서 전교 1~3등 안으로 못 들어가면 너네가 지금 이름 아는 대학은 꿈도 못 꾼다. 반에서 3등은 해야 소위 ‘인서울’을 갈 수 있다. 고1 3월 모의 처음 딱 보고, 전과목 통틀어 1~3이 하나도 없다면 그냥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 하는 소리를 아주 가차없게도… 했다. 뼈 맞은 아가들 표정을 보고 좀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모르겠다.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이 지들한테 어떤 영향을 줄 지 상상도 해보지 않은 아가들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이 모든 것이 마치 장난 같다. 장난 같은 세상.

가끔은 이런 게 공부하는 맛인가, 싶다가도 다른 일에 쫓기면 화가 난다. 억울하다. 집이 먼 것도 억울하다. 억울하고 분통하다!!! 어떻게든 해결을 지어야지… 어쩌다보니 한 시에 점심 먹어놓고 저녁도 놓치고 열 시가 넘어서까지 모니터만 들여다보았던 어제는, 나오면서는 정말 괴상한 기분이었다. 쳇바퀴는 들어가기는 쉬운데 나가기는 너무나도 힘이 든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휩쓸린다. 무엇에든 휩쓸리면 안 되는데. 실제론 그런 일은 한갓 꿈이다. 동기 C와 얘기를 좀 나누고, 생각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못내 부끄러운 척(?)하면서 순순히 URL을 내놓았겠다.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고. 자세히 보니 아주 조금 보이는 것. 신기한 경험이었다. 종잡을 수 없지만, 기실 잡아야 할 종도 없을 그런 것. 그게 누구건간에 타인을 ‘이해한다’라는 말은 굉장한 오만이 될 수 있다.

조금 전에는 아닌 밤중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그것도 카톡으로. 얼굴을 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고, 얼굴을 보지 않으니 다행인 듯도 하고. 답답한 것이 속에 끓을 때가 있다. 그나저나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인데. 묘하다. 기묘라. 기묘라. 어떨 땐 말들이 여기저기서 흩어지고 산발한다. 그리고 채 잡지 못한 채 사라진다. 붙잡아 두기가 쉽지 않다. 정신머리 하나도 잘 붙잡질 못하는 걸. 더 잘 하고 싶다. 잘난 사람이 아니어서 안타깝지만, 잘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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