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1. 반말

기사님, 반말 없는 곳으로 가주세요

페이스북에서 문득 보다가, 저장을 했다.

2017년 10월 14일 수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지하철을 오래오래 타고 수원역에 내렸다. 시간이 늦어 버스는 안 되겠고, 아무래도 택시가 낫겠다 싶어 일단 광장처럼 보이는 출구로 나섰다. 역전에는 길고 긴 택시 행렬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손님을 태운 채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정차해있었다. 줄이 짧지도 않았다. 택시가 늘어선 방향은, 역을 정확히 등지고 직진을 해야할 것처럼 보이는 방향과는 달랐다. 지도로 놓고보면 나는 역을 기준으로 동으로 직진만 하면 되는데 차는 남으로 늘어서 있었으니까. 하여간 도로 마지막 차선에는 그렇게 손님을 태운 빈차등이 꺼진 채로 출발하지 않은 택시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나는 일단 역 앞의 회전구간을 돌아 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끝차로 하나 안쪽의 빈차들을 향해 걸었다.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이었다. 어차피 늦은 마당에 느릿느릿 걸은 것도 아니고, 상황을 두루 파악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걸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난데없는 경적음, 바로 앞 택시에서 들려오는 순도 200%의 짜증 섞인 고함.

아가씨! 뒤로 가! 뒤로!!

일면식도 없는 기사가 조수석에 손님을 태운 채로 나를 ‘뭐 저런 미친 년을 다 봤나’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그 차 앞을 지나가는 찰나였으니, 순간 내가 느낀 당혹감은, 저 새끼 내가 저 빈 택시로 계속 걸으면 그대로 악셀이라도 밟을 기세네—하는 수준이었다.

그제서야 저 끝2차로의 빈 택시들이 그 도시의 택시 운전사들이 공유하는 모종의 룰을 어긴 차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래 사실, 서울이건 천안이건 부산이건, 어디든 다 비슷한 규칙이 있다는 걸 안다. 택시 승차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택시들이 줄을 지어 대기를 하고 있을 땐 응당 앞차량부터 차례대로 승차해줘야 하고, 그 규칙 밖에서 먼저 손님을 태우겠다고 뻗대는 차량에는 타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임을 나도 안다.

다만 이방인인 내 눈에는, 손님을 태우고도 줄지어 출발하지 않고 서있는 택시들이 왜 저러고 있는지를 이해할 시간이 모자랐고, 회전교차로를 두고도 남향으로 줄줄이 서있던 택시들은 내가 갈 동쪽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뿐이었다. 물론 경적을 듣고 끝차로의 빈차를 향해 걷는 동안에야 나는 내 등 뒤에 있던 빨간불 신호를 발견했고, 그 신호를 받아야만 회전교차로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적어도 내 기준에는) 신호등이 어처구니 없게 한참 밑에 붙어 있었다.

난데없는 경적+짜증+반말의 콜라보를 당하고 나니 당연히 열이 뻗치는 터. 끝차선으로 돌아가 줄줄이 선 택시들을 10대 가까이 지나서 빈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으며 놀란 마음 다스린다고 기사님한테 인사를 건네며 목적지를 말하고, 바로 전에 있던 일을 대강 말했다. 뭐 구구절절 말할 일도 아니었는데. 앞의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대뜸 반말을 하더라, 짜증을 심하게 내셔서 당황했다, 그런 말을 하는데. 미친.

이젠 이 기사가 훈장질을 한다. 교묘하게 반말을 섞어가면서. 그랬을 리가 없다고. 당신이 잘못 들은 거고, 도로가 시끄러우니 크게 말한 것 뿐일 거라고. 처음 보는 기사가 반말을 했을 리가 있냐고. 있다고 씨발놈아 방금 내가 들었다니까? 짜증을 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아니 나도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짜증을 내더라니까? 그러더니 점점 늙은 사람들이 하는데, 젊은 사람이 이해해야지, 하는 나이유세를 시작한다. 연설은 내가 차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 당신 욕한 것도 아닌데 엄한 저가 욕이라도 먹은 것처럼 버튼이 눌려서는 저 옆에 앉은 손님을 가르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아, 정말, 다채로운 씨발-아재들의 향연.

그래요 기사님, 반말 없는 곳으로 가주세요.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