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전월의 마지막 밤에서 이어쓴 손글을 옮겨 적어둔다.
1.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펜을 잡아 생각을 풀어내본 일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 지났다. 쉽고 간단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데에 적응한 이후로, 글에 부질없는 미사여구가 꽤 늘었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또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글을 내리쓰기 때문이겠지.
이 구식의 양면괘지를 펼쳐두고 펜을 들면, 내가 적는 글이 무슨 글이든 다 편지를 쓰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언제부턴가는 평범한 공책을 쓰지 않게 됐고, 샛노란 리갈패드 따위를 들고 다니는 것이 더 익숙해졌는데도, 그 흔한 편지지는 이 괘지를 포기할 수 없어, 다 구겨진 괘지 묶음이 여전히 책장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아날로그 인간에 대한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일까.
2.
한참 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기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항상 변명처럼 하던 ‘나는 애들이 싫어’, ‘고등학생 정도는 돼야 대화가 되지’ 하던 내 과거의 말들은 사실 그냥 내 이기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것. 상대의 수준이나 이해도, 배경 따위를 고려하는 것이 귀찮았던 딱 그 정도 수준의 내 이기심.
각자 나름의 고민들을 제 무게대로 안고 살아가는 게 인간지사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왜 나는 유독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만 그렇게 불친절했을까. 왜 한 박자쯤 기다려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러는 나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고 잘난 사람이었다고. 결국 나도 나보다 성숙한 이에게는 철 없이 어리기만 한 아이였을텐데.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냥 까마득한 어린 애에 불과한 것을.
3.
교회에 다니고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굳이 애쓰고 힘들이지 않아도 나를 돌아보고, 내 주제(혹은 관심사)를 명확히 할 기회가 주어졌었는데. 이제는 머릿 속에 어떤 생각도 들어있지 않은 ‘멍청이1’ 정도가 된 것만 같다.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시험이 코앞에 닥친 것은 공부하기 싫고, 그 옛날 수학문제 풀 적의 집중력이 그리워 수학책을 펼쳤다 이내 후루룩 책장만 넘기고 그냥 덮어버리고, 읽겠다고 사둔 책은 잔뜩 쌓여있는데 막상 읽는 호흡은 점점 짧아져만 가고. 이제는 그 간편한 영화, 드라마 하나도 집중해 보기가 어렵다.
4.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불안을 느끼는 자기모순 같은. 쉬어도 쉬지 못하고 놀아도 놀지 못하고. 요즘 애들이라면서 욕할 거리도 없다. 걔들이 적어도 나보다는 모두 낫다. 왜 나는 나 스스로를, 깊이 있게 사랑해주지 못할까. 당당한 듯 보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강샘의 평가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왜일까. 왜 나는 자라지 못하나. 왜 불안해하고, 왜 믿지 못하는 걸까. 알 수가 없다.
언제쯤 과잉없이, 담백하게 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까.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단어 하나를 고를 때마다 나를 변명하고 싶어하는 이 치졸함을 언제쯤 떨쳐낼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더 헤매고 나서야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