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정호승.
내가 생각한 전쟁 속에는 북한 소년이 띄운 종이배 하나 흐르고 있습니다. 아들의 마지막 눈빛이라도 찾기 위하여 이 산 저 산 주검 속을 헤매다가, 그대로 산이 되신 어머니의 눈물강을 따라, 소년의 종이배가 남쪽으로 흐릅니다.
초가지붕 위로 떠오르던 눈썹달도 버리고, 한 마리 물새도 뒤쫓지 않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종이배는 떠납니다. 빠른 물살을 헤치며 가랑잎들에게, 햇빛을 햇빛, 슬픔을 슬픔이라 말하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속삭이며, 뱃길을 찾아 기우뚱 기우뚱 전쟁과 평화를 싣고, 북한의 모든 가을 강물 소리를 싣고, 어제 내린 비안개를 뚫고 갑니다.
녹슨 철로 위에 뻐꾸기 울음 부서지는 이름 모를 능선과 골짝을 지나, 피난민들이 몰려가던 논두렁, 대바구니 속에 버려져 울던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와, 총 맞은 풀벌레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눈물냄새 묻어나는 휴전선을 지나, 무관심을 나누며 평화로운 사람들의 가슴속을 지나, 종이배는 우리들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햇빛 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고, 종이배는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반짝이는 강물 따라 아이들이 반짝이며, 신나게 기쁨의 팔매질을 하면, 햇살같이 나는 조약돌이 종이배에 내려앉고, 종이배는 강물 속 깊이깊이 흐르며, 또 한번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어머니. 내가 생각한 평화로운 전쟁 속에 가을이 오면, 해마다 우리나라의 소년들은 종이배를 띄웁니다. 모든 인간의 눈물을 닦아줄 한 소년을 태우고, 종이배는 머나먼 바다로 길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