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는 날들이 정신 없게 흘러간다. 모든 게 너무 휙휙 지나가버려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지난 금요일엔 이 상사께서 먼저 전화를 걸어오셨다. 남겨두고 왔던 연락처를 찾으신 것 같다.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듯했다. 지하철역에서 삼십여분간 짧지 않은 통화를 마치고 월요일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다. 월요일 전화를 걸었더니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 한다. 장마가 연일 이어지니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으시다고. 더 중한 핑계는 아무래도 따로 있는 것 같았지만. 동네에 가서 마땅한 공간을 좀 찾아봐야 할까, 싶다가도 두세 시간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다하시는 어르신을 얼마나 모시고 나올 수 있겠나 싶어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
내가 적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되는 걸까.
광어우럭도다리 앞에 놓고 그날 밤 어두웠던 할머니방 생각이 나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왜 녹음을 안 했을까. 진짜 안 했던 게 맞나? 어딘가 찾아보면 나오려나. 그때 했던 메모는 어디에 뒀었더라. 다시 읽으면 적지 않았던 다른 말들도 있으려나. 나는 결국 나의 글만 되새겨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나저나 이런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모르는 이름으로 카톡 전화가 왔다. 꽤나 늦은 시간이어서 뭐지 이 미친놈은, 하는 사이에 전화가 끊어졌다. 프로필을 열어보면서 너무나도 정직한 프사를 보고 간신히 누구인지 떠올려냈다. 조금 있으니 카톡 아닌 일반 전화—역시 모르는 번호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나 해서 머뭇하는 사이에 또 끊기고. 그리고 다시 걸려온 카톡 전화. 대화는 길지 않았다. 이유가 좀 웃기고, 좀 짠허기도 하고, 그 친구놈 너무하네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세월이 참 오래 지났다.
얼마 전엔 숱해 전에 지웠던 밴드를 깔았다가 유물 같은 글도 발굴했다. 참으로 알찬 저주 같기도 하고, 발악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읽고 있자니 이상하더라. 내가 지나간 시간들에 너그러운 (척 할 수 있는) 건 사실은 내가 늘 최종적으로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가해자라는 단어가 좀 부적절한 것도 같지만, 뭐 잘 모르겠다.
모든 것들과 별개로, 꼬박꼬박 즐거운 때가 온다. 며칠 전엔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꼭 완전히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었다. 빈틈없이 행복해, 라는 어떤 노래 가사에서 느껴지는 밀도를 떠올린다. 여전히 어려운 것들은 어려운 것들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숨은 쉬어진다.
그 와중에 얼마 전에 좀 머저리 같은 말을 했다. 두고 기억날 것 같다. 아니지, 솔직히 말하면 금방 까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나 무신경한 나란 년.
요즘 슬슬 졸업을 한 학기 더 미뤄야 하나 하는 생각이 꿈틀꿈틀 올라온다. 보면 볼수록 봐야할 자료가 많은 것 같고, 아직 몇 만나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고, 학원 일은 점점 바빠져서 시월이 지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을 테니, 이 참에 본격적인 자료분석은 11월부터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핑계 대면서 말이다. 몇 주 전쯤 타임라인 짜봤다가 너무 우울해서 관뒀다. 나씨 되게 펑펑 놀고 있지도 않은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이리저리 치이고 사는가 모르겠다. 효율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그런 강박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항시 공존한다. 적당히 하고 끊는 것이 가장 필요한 순간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실천하기란 영 어렵기만 한 것 같다. 나 역시 너무 나이브한가…?
계획에 없던 수입이 더 늘면서 이제 그런 부분에선 꽤나 자유로운(?) 삶이다.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니 분명 잃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만큼 불안이 적었던 적이 드물다. 느닷없이 등가교환의 법칙 같은 게 생각나네. 나 지금 사실은 키메라를 연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쓰면서도 참으로 얼탱이가 없는 문장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