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마주친 눈이 그저 스쳐지나지 않고 정확히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음을 느낄 때, 으레 다들 하는 것처럼, 또한 나 역시 오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선이 출발하는 그 지점을 향해 내 시선을 던지면, 순간 느껴진다. 상대의 당황이.
그리고 나는 일평생 살면서 그런 시선을 여성으로부터 받아본 적이 없다. 의도했든 아니든 상대가 그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만큼 누군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대개 ‘남성의 행위’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시선을 ‘받아치는’ 재주가 늘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별 게 없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같은 반응을 예상하지 않는/못하는 것 역시 별 이유는 없다. 그런 경험 없이 살아온 것 뿐이다.
페이스북에서 obliviousness에 관한 글을 보고 떠올랐다. 그리고 또 언젠가의 나를 떠올렸다. 잘 차려입은 날, 공들여 화장을 한 날, 가끔은 치마가 짧거나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날, 어떨 땐 그 모두가 다 해당되는 날, 그런 날의 시선들을. 그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가 되건간에, 그것은 ‘응시’였다. 그 ‘응시’를 겪는 순간의 나는 어땠었던가.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잘 차려입지도, 공들여 화장을 하지도, 짧은 치마를 입지도,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지도 않지만, 그렇기에 마주하는 또 다른 종류의 시선이 있음을 느낀다. 대체로 그 시선에는 어떤 욕망보다는 생경함이나 신기함, 심하게는 거부감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시선이 권력이라는 푸코의 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 시선을 표출하는 쪽은 그것이 권력(그리고 때로는 폭력)임을 인지조차 못하기에 더욱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