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1. 이제는 밤을 새면

아침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디가 아프기 시작한다. 밤을 지새우고 0630 쯤 두 시간이라도 자보겠다고 누워서 갖은 용을 다 썼다. ASMR 사운드가 종종 섞여나오는 자장가용 클래식을 틀어놓고 눈을 꾹 감고 있다가 동트는 아침 빛이 너무 밝아 메구리즘 안대를 꺼내서 써보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대가 슬슬 달아올라 뜨끈뜨끈해지고 다시 또 식기까지 2-30분 가까이 그 온기를 느끼는 채로 정신은 깨어 있었다. 아홉 시가 되어 별 수 없지 싶어 샤워를 하는데 보나마나 오늘 스케쥴이 다 끝나면 집에 와서 뻗고 싶겠거니 싶어서 매일 끼는 렌즈 말고 원데이 렌즈를 꺼냈다. 평소같은 컨디션에는 확실히 원데이 렌즈가 조금 더 편안한 느낌이 있는데, 날밤을 새고 세수하면서 렌즈를 끼려니 원데이고 나발이고 눈이 뻑뻑하고 아프다. 씻고 나와 이것저것 바르고 머리 말리고 옷 입는 사이에 눈이 무거워져서 아침부터 인공눈물을 부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근해서 아침 회의를 마치고, 책을 세 권 반납하고, 메일함에 과제를 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덕에 우체국에 가서 반 년은 마음만 먹고있었던 것 같은 필름을 보내고 며칠째 아픈 목도 볼까 싶어 진료소를 갔는데 오전 진료가 끝나있었다. 돌아와 잠깐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런치세미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 듣고 마친 뒤에 잠시간 방황하다가 할리스. X가 올 때까지 멍한 채로 있다가 스터디. 두 시 좀 넘어 시작했는데 두 시간도 안 돼서 마무리하고 (다들 어딘가 피곤하고 지쳐서 잡담도 질문도 적었다) 어쩌다보니 J와 같이 움직이다가 택시를 타고 귀가. 들어와 시원하게(!) 렌즈를 빼서 버려버리고 (이게 참 별 것도 아닌데 쾌감이다) 불도 다 끄고 전기장판은 켜놓고 누워 잠을 청했다. 일고여덟 시쯤 일어날 계획이긴 했지만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니까. 그보다 좀 더 늦은 시각에 정신을 차리고, 어제 시켜서 먹고 남은 김치찜+떡갈비+계란말이+그리고 오뚜기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었다. 며칠 전에 JJ에게 플라스틱에 든 음식을 그냥 전자렌지에 돌리면 어쩌냐고 난리를 쳐놓고 오늘은 내가 귀찮다고 플라스틱채로 음식 데우다 하마터면 험한 꼴을 볼 뻔 했다. 플라스틱 성분이 녹아들어갔을 김치찜에 밥을 먹고 있자니 나의 이중성이 참으로 새삼스럽다. 그 뒤론 내내 카카오톡 샵(#)에 있는 웃긴 글 같은 거나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새벽 지나서는 새로 정주행할 그녀의 사생활 오늘 방송분(ep2)을 보았고. 김재욱은 나이가 들면서 훨씬 더 멋있어졌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 찍는 걸 보면 아주 갱장해(흐뭇). 학교 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 순간의 햇빛이 나흘 만의 햇빛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저녁 무렵에 츄럭을 타고 본가에 다녀온 뒤로, 그 일요일~월요일 사이 새벽에 집에 들어가 오늘 학교를 가기까지 집 밖에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순전히 며칠씩 집에만 있기란 내 인생에서 굉장히 드문 일인데, 어딘가 다람쥐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우스웠다. 쳇바퀴를 돌리고 살면서도 다람쥐 같다고는 잘 안 느꼈었는데. 아이폰이 측정해 준 나의 걸음수를 확인해보니 가관이 아니다. 기록이 있는 것이 2015년 어드메부터인데, 왕복 2시간 통학러에 일도 많았던 2016년에 비교하면 지금 2019년 평균은 2천 걸음 정도가 빠진다. 바쁘게 지낼 때는 하루 종일 나가 돌아다니다보면 2만 보쯤 거뜬해서, 만취한 다음날 하루종일 집에 처박혀있어도 뭔가 종종종종 움직인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평균이 떨어진다. 그리고 또 웃긴 건, 대체로 겨울에 가까워지면 평균 걸음 수가 확연히 떨어진다는 것. 나는 아마도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 가까울 것이다.

월요일의 1,052 걸음 중 1,000걸음 정도는 일요일의 연장일 것이다.

내일을 위한 과제를 써야 하는데, 뭔가를 쓰고 싶다는 의욕이 잘 생기질 않는다. 방법론 수업에서 프로포절을 써서 내면서 괜히 다시 논문 주제에 대해서 더 읽고 더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었는데. 사실 그러라고 있는 방법론 세미나인데도 나(를 포함한 우리)는 왜 이렇게 이게 고통스럽기만 할까. 쥐어짰다는 말이 맞는 듯 싶다. 그러니까 계속 어딘가 맘에 안 든단 말이지. 까끌한 무언가가 목에 계속 걸린다. 침을 삼킬 때마다 아픈데, 목감기라기엔 계속 목만 아프고 있다. 그것도 집 밖에 안 나간 요며칠 사이에 생긴 증상이라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크게 무리되지 않는 듯 하면서 가만하게 무기력과 유기력 사이를 자울거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시각이 0442인데 배가 고파져서 큰일이다. 돈 아끼겠다고 집에 있는 걸로 최대한 해결하려고 하는데, 집에 매양 있으면서 그런 마음을 먹어봤자 한 끼 밥만 시켜 먹어도 결국은 도루묵이더라. 역시 최선은 학식삼끼일텐데.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