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아했던 웹툰이 있다. 네이버 월요웹툰, 까마중 작가의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재 마치기까지 한참을 쿠키를 구워가며 봤다. 그러니까 완결편을 본지는 몇 주가 지났다. 침대에 누워 밀린 웹툰 몇 편을 보다가 완결 후기가 올라와있어 그걸 읽고, 어떤 강력한 느낌적인 느낌에 이끌려서 블로그를 찾아 보았다. 느낌적인 느낌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다만 이 몇 마디 줄이 내가 그동안 봐왔던 작품의 가치를 한없이 무너뜨린다는 점이 너무도 안타깝다. 진보적 신앙관을 가진 기독교학과를 다녔다는데, 글쎄. 글쎄.. 글쎄…
지나간 오늘—0319—발제가 있었다. 새벽까지 리딩을 간신히 마치고 발제문 한 글자도 안 쓴 상태로 잠깐 잔다고 누워서 1120까지 내리 잤다. 꿈에서 계속 발제문을 쓰고 또 발제를 했던 것 같다. 가위라도 눌릴 것만 같이. 결국 일어나 정신 차리고 1130~1335, 두 시간을 폭주해서 간신히 A4 넉 장을 만들어내고 인쇄는 친구들한테 맡긴 채 서둘러 머리를 감고 택시를 잡았다. 3분 지각했는데 다행히 교수님보단 빨랐다. 숨을 한참이나 고르고 발제를 했다. 워낙 짧게 쓰기도 했거니와, 말이 적잖이 빨랐던 터에 30분이 되기도 전에 발제를 마쳤다. 수업은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 반만에 끝났다.
일찍 마친 김에 사무실을 잠시 들르고, 사도에 가서 책을 빌리고, 셔틀을 타러 갔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 나와서, J양과 함께 쌀국수를 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과외에 갔고, 마치고 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목요일 리딩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어깨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집에 와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조금 개고, 책상에 주저앉아 리딩을 좀 하다가, 이런저런 작업을 좀 더 하다보니 네 시가 다 되어간다. 그리고 누워서 웹툰을 본 것이다.
발제에 담지 못한 부분이 사실은 제일 흥미롭고 또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토론에서 가장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 역시 차라리 그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발제문에 토론주제도 쓰지 않았고, 교수님도 그걸 따로 신경쓰지 않으신 듯 했다.) 대강 꼽자면 분석수준의 하향화와 구술사 방법론. 기억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일본이 바라보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그리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 나아가 한국이 바라보는 ‘베트남전쟁’과 ‘샌프란시스코 체제’, ‘한국전쟁’,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읽고 싶은 글이 많다. 그런데 읽어야 하는 글이 더 많다. 또 쫓기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고 내 스스로에게 들었던 그 복잡한 감정이 차마 언어화되지 않는다. 왜인지 무섭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정약용이 수오재기에 쓴 ‘나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은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었을까. 새벽이 깊어 다시 또 배가 고프다. 부질없는몸뚱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