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전의 이야기를 했다. 맑은 고딕이네. 왜 맑은 고딕일까. 나는 그때에 내가 이미 ‘글러먹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을까. 시작부터 잘못됐던 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모두 틀린 거였다면 어떡하지. 나는 이제 구제불능인 걸까. 그런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순간마다. 한다. 그 생각을.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다. 이상하다고 했다. 처음이라는 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다 보면 구제불능이 구제가능이 될까. 팰까. 팰까……
누군가 내가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갈 때마다 옆에서 (삐삐) “틀렸읍니다.” 라던가 “!!!훌륭합니다!!!” 하면서 추임새를 넣어주면 좋겠다. 내가 찌끄려놓은 것이 흡사 어떤 의미를 가진 문장이 아니라 그냥 하나하나 마디마디가 둥둥 따로 제각기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니는 먼지뭉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야 말로 말인가 막걸린가. 그나마 구구절절하게 성격의 장단점 따위를 쓰라고 하지 않는 두 쪽짜리 양식이 더 고맙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막한 것은 이 놈이나 저 년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이 2n이 되도록 성격의 장단점을 소상히 밝혀야만 하는 자기소개서를 이렇게까지 써본 적 없이 알바에 알바에 알바에 알바를 거듭했으니. 이만하면 내가 얻었던 일자리들은 아주 합리적이고 썩 그럴싸한, 그런 자리들이었던 것인가. 감탄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자신감이 생기다가도 만다. 글 하나, 댓글 한 줄에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만큼 얄팍해서 그렇다. 그러다가도 또 무슨 글을 쭉쭉 뽑아내다 보면 ‘아니 이만하면 좀 받아줄 만도 하지 않냐?’하는 생각을 혼자서 또 한다. 하지만 이깟 글월 몇 줄이 대관절 어필이 된다한들 얼마나 되겠는가. 세상에 쉬운 건 없다지만, 이거 하나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힘들 거라면, 이 밖의 것들은 힘들지 않기로, 내 인생을 이루는 무언가들이 알아서 협의를 좀 해주면 좋겠다. A가 나를 고생시킬 땐, B는 잠시 숨을 고르기로 하자. A가 끝나고 B가 난리를 피우는 동안에는, C는 얌전하기로 하자. 제발. A도 B도 C도 한꺼번에 모두 목청을 틔우고 나를 잡아먹겠다고 치고박고 싸우지는 말아주라.
내일은 모씨를 만나러 가야 한다.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서,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어서, 두렵다.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