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6. 운수 좋은 날

8월 6일에 두 번째 시험을 보고 내심 기대를 했더랬다. 처음 시험장 들어갔던 날에 비하면 넘나도 잘 들리고 넘나도 잘 풀려서 난 내가 정말로 답도 많이 맞추고 나온 줄 알았더랬다. 가족 단톡엔 650점을 불러놨었지만 그래도 700이 넘지는 않을까 하는 굉장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고는 10일부터 계속 아팠다. 고생 좀 덜 해보겠다고 아픈 첫 날에 당장 병원부터 달려가 영양제도 맞았다. 무려 4만원 짜리로. 그러곤 11, 12, 13, 14, 15일까지, 아주 쭉, 내리 놀았다. 아픈 몸뚱이는 좋은 핑계였다.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곤 16일이 되어 점수가 나왔는데, 웬걸. 650도 정말 간신히 넘어서 653점이었다. 마음 속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이미 시험 본 그 날 이후로 (근거도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정신을 좀 놓고 있었는데,  이런 날벼락이라니. 19일이 또 시험이었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냥 되는대로 시험은 일단 치고, 망한 공부는 그 다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리 마음 먹었다. 성적 나온 그 날로 9.2(일) 시험도 접수했다. 이미 추가접수 기간이어서 돈도 3천원 더 냈다.

19일은, 처음으로 본 오후 시험이었다. 시험 핑계로 한 시 과외를 아침 열 시로 땡겨놓고는 내가 지각할 상황이라 아침부터 난리를 겪었다. 지선버스를 탔다가 지하철을 탔다가 종각에 내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간신히 정각 10여분 안짝으로 과외돌이 집에 도착했더니 온가족이 꿈나라에 있었다. 어머니가 바뀐 수업시간을 전달을 안 해주는 바람에 아무도 몰랐단다. 덕분에 거실에 앉아 십여분을 더 놀다가 수업을 시작했다. 과외가 끝나곤 밤사이 지긋지긋하게 거슬렸던 다 떨어져나간 네일을 지웠다. 예약할 네일샵을 찾는 내내 나는 그날이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인 줄만 알았다. 그게 다 텝스 때문이었다. 여차저차해 가까운 네일샵도 찾았고, 적당한 시간에 쏙오프도 잘 끝냈다.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아 지하철을 타고 회기로 이동했고, 1출 근처에서 월남 쌀국수를 먹었다. 속이 좋질 않아 반쯤 남겼다. 6일에도 그랬지만 시험보는 날마다 답지 않게 속이 뒤집어졌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었던 거겠지. 결국 시험장에서도 고생을 했다. 생수 한 병을 사들고 들어갔는데, 소용도 없었다. 당연히 망한 시험이겠거니 했다. 600이라도 나와주면 감사하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시험 전에는 가족방에 700점 거뜬히 넘겨 730점 정도는 나오게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망할 시험 결과가 오늘 나왔다. 귀신 같이 730점이 넘었다. 600을 불렀을 땐 611점이 나오고, 650점을 불렀을 땐 653점이 나오고, 730을 불렀더니 744점이 나왔다. 울엄마 최소 소원을 이뤄주는 지니. 두비두밥. 조금 소름이 돋아서 어깨춤을 출 뻔 했다. 42,000원짜리 다음 시험 접수도 당장 취소했다. 접수가 늦은 덕분에 전액 환불이었다. 아주 간만에 모든 것이 합심하여 선을 이루는 이런 느낌적인 느낌이라니. 물론 기쁜 대로 기뻐할 상황은 되지 못해서, 적당히 기뻐한 뒤로 속으로 혼자 더 많이 후련해했다. 해치웠다. 해방됐다. 거짓말 많이 보태서 없던 조국이 독립한 기분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끝났다. 학원을 가지 않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도 이젠 느끼지 않아도 된다. 끝이 났다. 끝을 냈다. 그렇게 내적댄스를 하는 심정으로 밥도 먹고, 왁싱도 받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했다. 그러곤 집에 와서 습관처럼 대학원 입학처 사이트를 열었다가 무언가 바뀐 걸 확인했다. 아. 드디어 기다리던 2018학년도 전형공고가 떴구나.

그리고 없었다.
거기엔 그것이 없었다.
슬픔과 우울과 방황은 다시금 나를 찾아왔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이 오라질 년!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