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5. 그렇게 생긴 사람인 거야

계속 말했다. 계속, 계속 말한 것 같다. 늘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 유독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 왜였을까. 잘 모른다. / 진로(?)인지 진학(?)인지 하여간 미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는 지금 미래가 없는 사람으로 산 지 오래다. / 확신이 없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럼 이전에 어떤 일들을 하면서 아 이건 확신이 든다, 이게 다른 것보다는 낫다, 더 좋다, 그렇게 느꼈던 적이 있어요? / 동국북 과제할 때요. / 한 달을 넘게 머리를 싸매고, 수시로 글을 읽고, 그 글들을 소화해내고, 새롭게 글을 쓰고. 그게 너무 버거우면서도 머리가 팡팡팡 돌아가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 그래서 그 때, 교수님한테서 ‘너 공부해라’라는 말을 듣고, 그 칭찬이 내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였어요. 그때 그 얘기를 안 들었더라면, 나는 대학원을 내 선택지 안에 넣으려는 생각 조차 안 했을지 몰라요. / 옛날 생각을 좀 했는데. 어제 봤던 캘린더에 대한 소회도 그렇고. 종종 그 옛날의 캘린더를 보면서, 그 옛날의 과제물들을 보면서 뿌듯해하고 못 잊어 하는 것은. 그때의 나는 꽤 괜찮았으니까. 계속 자라고 있었으니까. 뭔가를 배우고 있었고, 공부하고 있었고, 고민하고 있었고, 열심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좋았고, 재미있었고, 즐거웠으니까. 바빠도 할 만했고. 그 모든 것이 나를 키우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 그 의미가 있었을 땐, 내가 좀 설렁설렁 살더라도, 덜 바쁘더라도, 남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도, 내가 내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았었어. 아니 사실은 그 모든 의미들을 놓칠 수 없어서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정신없게, 종종거리며 살았지. 그래도 살만했고. 만족했고. 충만감이 들었었지. 뿌듯하기도 했어. / 하지만 지금의 나는 ‘멈춰있다’. 정체된 지 오래다. 배우지 않고, 공부도 안 하고, 고민도 그만 두었다.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괴감을 느껴. 지금의 나는 내가 봐도 아니니까, 나는 멈춰있고, 남들은 조금씩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누구는 벌써 입사 2-3년차를 달았고, 누구는 벌써 석사논문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는데, 나는 여태 뭘 한 건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드는 거지. 비교하지 않았던 것들까지 비교하면서 불안해지는 거야. / 내가 내 삶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그런 ‘의미’들이 꼭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 거야 나는.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가 재미없다. 싫다. / 내 삶에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야만 하는 돈벌이는 그래서 ‘증오스럽다‘. / 그러니까 나는 그냥 시발시발 하면서도 바쁘게 살아야만 할 운명인 거다. 나기를 그렇게 난 것 뿐이다. / 지금의 내가 내 삶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을 찾아서, 내가 성장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이 빈 공간들을 채우는 일이 필요하다. 조금 더 바빠지더라도. 그게 나를 살아있게 해 줄 거야.

3 thoughts on “2017. 5. 25. 그렇게 생긴 사람인 거야

  1. donghwilee says:

    뭐라써야할지모르겠지만 응원을 씁니다
    응원을 쓰면 응원이 되나 모르겠지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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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려 says:

      ㅋㅋㅋㅋㅋㅋ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지요. 기말이 끝나면 슬슬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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