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7. 변화

1부

마지막 주에 느닷없이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고, 그렇게 하루치 보너스로 아껴놨던 휴가에 (존재하지도 않아서 결국 마이너스휴가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은) 이틀 치의 휴가까지 써먹고, 수술 사흘 만에 다시 업무에 복귀해, 이틀을 마저 출근하고,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나 혼자만 재밌는 고별사를 던지고, 여하간 상상 그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게 흘러간 1월의 전반이었다. 한 주를 꼬박 집구석에서 굴러다니며 쉬었는데,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집에만 있지는 못했다. 모두에게 나는 당신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괜찮음을 하도 여러 번 반복했더니 다들 나를 환자가 아니라 그냥 실직한 백수로 봐준 덕분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마지막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실밥 제거라고 해야하나(…) 근데 실밥이라는 게 있기는 했었나 싶었다. 수술한 이후론 계속 수술부위에 뭔가를 붙여놨었기 때문에 사실 유심히 들여다볼 새가 없었는데, 월요일 진료실 진찰대에 누워서 옷을 추스르는 사이에 의사양반이 수술부위에 붙어있던 거즈 같은 거를 콕!콕!콕! 하고 떼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밥이라면 뭘 끊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뭔가가 톡!톡!톡! 그래서 아직도 궁금하다. 거기 붙어있었던 그 손톱만한 천떼기(?)의 용도는 무엇인가. MJ의 조언을 새겨받아 흉터제거 연고를 처방해달랬는데 비급여 5.5만원이었다. 그 가격을 진료 다 마치고 나와 결제할 때에야 들었는데, 뭔가 부지불식간에, 아주 황망한 가운데에 내 카드가 그냥 ‘긁히었다’. 그러고는 미아 현백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 와 뒹굴거렸지. 저녁에는 묵동엘 다녀왔고.

그 다음 날엔 J군 생일이라 KHU 앞에 가서 삼겹살을 먹었다. 사실 그간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J군 생일이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다. 더 좋은 밥을, 더 좋은 장소에서, 더 좋은 분위기와 함께 사주고 싶었지만, 이미 패가해 망신할 일만 남은 상황이라 여건이 되질 않았다. 내 생일엔 이찌이를 다녀왔었는데. 다시 미안해지네. 나중에야 까먹겠지만 그날만큼은 미안했다. 아주 많이. 가볍고 소박한 선물로 책방에 가서 과학 문제집을 사줬다. 사달라기에 사줬는데 사주면서도 아리송하기는 했다. 냄비받침 안 되면 다행이겠다. 수요일 저녁엔 (예비)고용주를 만나고 왔고,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도 받았다. 퇴직 나흘 만에 다음 일자리 인수인계를 받는 이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역시 내 본분은 공부도 하는 노동자임이 틀림없다.

목요일엔 심부름을 겸해 병원엘 다녀오고, 겸사겸사 응급실에 들러 진료비 상세내역서도 발급받고, 보험회사에 청구서류도 송부했다. 더럽게 추운 날에 더럽게 바빴는데 볼일 둘 중에 하나만 성공해서 결국 토요일에 다시 가야만 했다. 금요일엔 마지막 실습을 마친 J군을 붙잡고 방 대청소를 했다. 이불도 빨고, 쓸고 닦고 치우고 버리고, 간만에 다시 사람 사는 방 같은 모양새가 됐다. 그 뒤로 뻗어서 집에서 굴러만 다녔다.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곰을 잡는 데 썼다. 좀 풀어 쓰자면, 큽스 다니던 시절에 잠깐 즐겼던 트리플타운에 요즘 다시 빠져서 황금성 만드느라 눈이 시뻘개지고 그랬다.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진행형이 맞다. 토요일엔 JJ와 HM씨가 오셨는데, 보쌈까지 좋았다가 족발에서 망했다. 넷이 앉아 자몽 일곱 병을 깠는데 자는 도중 새벽에 깨는 바람에 기껏 먹은 게 헛 게 됐다. 두 번을 ((그 분))과 마주하고 나서야 누워 잘 수 있었다. 일요일엔 끓여준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저녁은 본가에서 해결했다. J군은 방학 맞이 귀성(ㅋ) 채비를 했다. 월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갔다. 설이 지나면 올라온다하니 역사상 가장 긴 휴지기(?)가 되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도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2부

그리고 드디어 어제 (아직 잠들지 않았으므로 체감상 오늘 몇 시간 전이긴 하지만) 새로운 일터로의 첫 출근을 잘 마쳤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이가 어린 학생들일수록 어떻게 대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중1반의 어느 학생이 ‘나중에 뭐하고 싶니’하고 물었더니 ‘그냥 여건 되는 대로 살 거에요. 그것도 어렵겠지만. 요즘 다들 취업이 안 되잖아요.’라고 대답하길래 쟤는 열넷의 탈을 쓴 스물넷인가 싶었다. 사실 스물 넷이 저런 얘기를 해도 말투가 뭐가 없어서 별로 동조는 안 해줬겠지만. 집에서 뭘 듣고 자라길래 고작 중1짜리 어린 애가 (심지어 현재로서는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중학교 배정조차도 받지 않은 초6 학생인 셈인데) 저런 말을 입에 담는 건가. 그 어린 친구가 오늘 70분짜리 강의시간 중에 ‘취업난’이라는 표현을 쓴 게 아마 내가 지난 몇 달간 그 단어를 쓴 횟수보다도 많을 것 같다. 물론 그게 또 틀린 말도 아니니 그런 생각 못할 이유야 없지마는, 진심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뭔지 좀 이상하게 열이 난 상태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막 쏟아내버렸는데, 집에 와 생각하니 열 살도 더 어린 영혼들을 붙잡고 하기에는 정말 부질없고, 무의미한 한풀이였던 것 같다. 아, 나는 아직도 크지 못한 반에 반쪽짜리 어른이다.

그래도 가장 큰 충격이 그 정도라서 다행이었을까. 그냥 착하게만 생긴 고1 여자애 둘이 제일 많이 물어본 질문은 다름 아닌 술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냥 귀여워보였다. 너희들 앞에 서있는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맥주를 참 좋아했(…) 유독 고1 애들만 붙잡고 별별 얘기를 다 해줬다. 70분을 꽉 채워 사담을 나눴으니까. 했던 알바들, 동아리, 취미, 연애, 아주 엑기스로 뽑아서 나를 파헤쳐줬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야 내가 선보러 가도 이렇게 디테일하게는 얘기 안 해주겠다’라고 했더니 ‘선 보신 적도 있어요?’라고 되묻길래 잠깐 멍하기는 했다. 근데 뭐랄까,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해줬는데도 표정에서든 대답에서든 뭔가 시원시원한 반응 한번이 없어서, 한층 더 절망스러웠다. 아 이런 얘기를 해줘도 이 정도로 반응하는 친구들은 도무지 강의 시간에 대답이라는 걸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데. 나도 참 수업 때 대답 안 했었지만. 누굴 가르쳤던 중에서도 가장 날 당황하게 만든 반응을, 오늘 보았다. 걱정이 조금 많이 된다.

3부

한국어능력검정을 상당히 오래 전에 접수해두었는데, 공부를 좀 해야 하는데, 음… 이제 ‘공부’라는 게 뭔지 몸이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큰일이다.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