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이렇게나 너무도 쉽게 읽히는 글을 너무 오랜만에 읽었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없어, 그저 읽히는 대로 읽어 내려가면 그만인 것을. 사무실에 앉아 몇번이고 울컥하고 눈가를 붉히며 읽었다. 전부 다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차마 내뱉을 수가 없다. 무슨 수로 알겠는가, 고작 ‘손자 세대’에 불과한 내가.

다만― 이 시절을 기어이 살아내어 지금에 이만한 활자를 남긴 그녀들에 비하여 대체 이 땅 한반도의 수많은 여성들은 언제쯤 다시 돌아보아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바보같은 질문임을 안다. 벨라루스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시베리아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수십년 째 방치되어 왔겠지. 통한이 어린 인터뷰들이 보여준다. 잊혀지고, 매도 당하고, 외면 받고, 영웅이지만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삶들이 어디 한둘로 그치겠는가.

이제 누군가는 지겹다고까지 말하는 일본군 위안부, 전쟁에서 아비와 남편과 아들을 잃고 그렇게 잃은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야만’ 했던 엄마 그리고 누나들, 누구보다도 국가가 앞장서 외국 군인들에게 팔아넘기고도 그런 적 없다 시치미를 잡아 떼는 꼴을 두 눈으로 봐야만 하는 여인들, 평생을 이등 국민 취급당한 그 여인들의 아이들, 차마 셀 수도 없을.

전쟁은 늘, 너무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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