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학재단은 때마다 아주 주옥같은 메일들을 보내서 나를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데, 이번에도 변함없이 그러하다. 이 빌어먹을 일관성.
대학(원)생들이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받는 장학금에는 꽤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다 기억도 못 할 만큼 많다. (이공계만 주는 장학금도 있고 뭐 하여튼 그래서 다 알 필요도 없다 사실) 그래도 개중 학생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 장학금이 대표적으로 국장I, 국장II, 국가근로 이상 셋이다. 국장I은 말 그대로 소득분위대로 뚝뚝 잘라서, 정해진 금액만큼 턱턱 주는 돈이다. 이 학교를 다니나 저 학교를 다니나 같은 분위면 똑같은 장학금 받는다.(등록금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렇다.) 국장II는 약간의 학교 재량이 들어가서, 소득분위를 참고해서 학교가 알아서 준다. 국장II에 쓰이는 돈보따리 자체도 학교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국장II는 줄지 말지도 학교 마음, 얼마를 줄지도 학교 마음. 나는 보통 지난 학기(마지막 등록학기는 2014-2)까지 전체 등록금의 절반을 국장I+국장II로, 나머지 절반을 학교 복지장학금으로 지원받았다. 그러다 2015-2 복학 시도 때 망했지. 그래서 이 소득분위 산정 가지고도 좀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그 주제는 아니고.
국가근로장학금이라는 게 있다. 상술한대로 국장I+II유형을 빼고 제일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장학금이다. 등록금 상한과 무관하게 일한만큼 받을 수 있고, 학교에 따라 매달 알바비 받듯이 지급받을 수도 있다. 물론 학기별로 몰아주는 학교도 있다. (강제 저축효과 굳) 이걸 왜 갑자기 꺼내들고 나왔냐면, 이 무뢰한 장학재단 놈들이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언제부터 국가근로장학금이 ‘취업연계 장학사업’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말장난도 이런 말장난이 없다. 이건 마치 전국 고등학교의 99.9%가 좌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있다는 말만큼이나(적어도 나한테는 더 심각하기도 한) 개소리다.
우선, ‘국가근로장학금’, 부터 오류다. 근로를 하고 받는 돈은 임금이다. 노동의 댓가다. 실제로 학생들은 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최대 주당 40시간까지 근로지에 가서 근무를 한다. 근무기록은 근무 후5일 이내에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기록(공인인증서가 없으면 기록도 안 된다!)하며, 근무지에서 또 수기로 장부를 작성해 별도로 제출한다. 양쪽 기록이 다 맞아야 ‘간신히’ 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일해서 대부분 한 학기에 100시간 정도는 훌쩍 넘긴다. 방학 때 몰아서 하면 두어 달 사이에 200시간도 거뜬히 한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학교는 정해진 시간을 주고, 그것보다 못 할 것 같으면 신청도 못 하게 막는다. 근로를 하다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휴학을 한 경우는, 이미 일을 했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받은 것임에도, 토해내야 한다. 근로의 댓가는 ‘장학금’이라 부를 수 없다. 그저 내가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일 한만큼 받는 것 뿐이다.
근데 이걸 받는 당사자들 조차도 이만하면 알바시급(올해 기준 최저 5680원, 통상 5800-6000원선)보다 훨씬 많으니 (교내근로 8500원, 교외근로 9000원) 그냥 닥치고 주는 대로 받지 무슨 욕을 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늘 말하지만 무식한 건 죄다. 당신이 18학점 수업 들으면서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게 됐다고 치자. 시급 5800원을 받겠다고 주말 금토일 저녁을 꼬박 알바에 바쳤다. 친구 만날 시간도, 팀플 할 시간도, 시험기간에 공부할 시간도 줄었지만 그래도 내 용돈 정도는 벌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근데 알바를 하다가 그만두게 됐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와서 ‘너 이렇게 그만두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라 우리 회사의 피해가 막심하니 네가 받은 임금은 다 돌려주고 가야겠다’ 하면 넙죽 돌려주고 나올 건가? 아예 시급 센 과외로 예를 들어보자. 과외 시장 선불인 건 너도 나도 다 아는데, 어떤 학부모가 사정사정해 후불로 시작했다. 역시나 시간을 쪼개 과외 준비도 하고 저녁을 바쳐 교통비도 들여가며 몇 달을 가르쳤는데 갑자기 내가 취업이 됐다. 수업을 더 이상 못 하게 생겼다. 그래서 말했더니 학부모가 이런 경우가 어디있냐며 화를 버럭 내고 돈은 못 주겠단다. 그럼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 저의 불찰입니다”하고 넙죽 돌아 나올거냔 말이다. 지가 쓰는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토대로 받은 임금을 왜 나랏님이 거저 주시는 용돈인 줄로 착각하고 사느냔 말이다.
장학금이란게 무엇이냐. 1. 주로 성적은 우수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보조해 주는 돈. 2. 학문의 연구를 돕기 위하여 연구자에게 주는 장려금. 奬學, 즉 학업을 장려하는 돈金이다. 장학은 무슨 일을 해야만 받는 돈이 아니다. (공부는 해야지만.) 그런 데에다가 은근슬쩍 허울 좋게 근로장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열심히 일한 자에게 지급한 돈이 늘어나면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확충했다!”고 ㅇㅈㄹ을 한다. 근로장학은. 근로’장학’이든 ‘근로’장학이든 무엇도 될 수 없으며, 여기에 쓰는 돈을 장학금 지급 규모에 통산해서도 안 된다. 그냥 아르바이트라고 불러라. 교내 아르바이트, 교외 아르바이트. 그게 맞다.
그런 와중에 ‘취업연계 장학사업’이라고? 이거야말로 어디 한 군데가 빠진 놈들 소행임에 틀림이 없다. 근로장학 해보면 안다. 취업과는 200% 무관하다. 과사에서 조교 옆자리 앉아 서류 정리하고, 우체국 심부름이나 가습기 청소나 하는 알바, 그것도 전일제도 아닌 시간제에 단기간 근로학생이 무슨 취업 비스무레한 경험이라도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설령 교내가 아니라 교외근로기관 중에서도, 손꼽히게 인기가 좋은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고 치자. (실제로 꽤 인기가 많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해본 적이 있다.) 그럼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취업에 가까워질까? 까놓고 말하자. 근로장학 경험은 자소서에 한 줄 글감은 될 수 있을지언정(그것도 끼깔나는 글빨로 뻥튀기를 잘 한다는 전제 하에), 이력서에 넣기는 조금 많이 민망한, 차마 경력이라고 할 수 없을 수준의 일임이 분명하다. 아르바이트 이력서에야 뭔들 못 쓰겠느냐만 세상에 작심하고 취업하자고 쓰는 이력서에 그런 거 쓰는 사람 없잖아. 그런데 취업연계? 지나가던 개도 안 웃을 이런 철 지난 유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