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 집에만 꼬박 처박혀있다가 일하러 간다고 나오면서 마스크 챙겨 쓰고 집 앞 정류장에 섰는데 벌컥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 더운 날씨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일요일 수업 때 학원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오후 시간 2층 강의실은 텅 비어버리고, 몇 안 되는 애들 데리고 3층만 수업을 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 말고 2층에서) 못한 수업 보강용 영상을 나눠찍게 생겼다. 맘에 안 든다. 여러모로 다 맘에 안 든다. 기왕 보강 이걸로 퉁칠 거면 다음 주 수업도 아예 영상으로 대체하면 좋겠다. 어차피 영상 찍는다고 고생고생 할 거면 12시간 근무라도 좀 피해보자. 이거 때문에 (겸사겸사 이 핑계로) 자바라스탠드 거치대도 사고 컴터 산지 이년 반만에 서피스펜도 좀 사고. 방구석에 앉아서 돈만 쓰는 게 아니라 방구석에 앉아서 돈도 좀 벌어보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꾸 집안일 하게 된다. 시간 없다는 핑계도 못 대고 집에서 자꾸 뭘 먹어대니 돌아서면 설거지가 산처럼 쌓인다. 이 짧은 기간에도 나는 전업주부엔 영 소질이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한다.
이 상사께서 거진 매일 전화를 걸어온다. 중요한 내용은 사실 없다. 처음엔 잘 들어갔냐, 늦지 않았냐. 다음엔 그날 밖에서 식사한 게 마음에 걸린다, 아프진 않냐. 여차하면 통화가 길어질 걸 알아서 냉큼 받지 못한다. 밖에 돌아다니면서는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혹시 모르잖아 싶어서 노트북을 펼쳐두고 전화를 다시 건다. 함께 일했던 언니분을 소개시켜주시기로 했는데, 전화번호를 받아와놓고 정작 또 전화 안 걸고 있다. 요즘은 정말 아무 것에도 집중을 못한다.
구술 작업은 구술자와의 라포가 중요하다. 약탈적 인터뷰가 돼서는 안 된다. 원하는 말만 듣고 돌아서서 팽해선 안 된다. 이 상사는 마음에 사무친 외로움이 많다. 함께 사는 가족들이 자신을 소외시킨다고 생각한다. 뒷방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여긴다.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이기적이다. 변변한 보상 하나 해드리지 못하면서 데이터는 얻고 있는 주제에 오는 전화를 껄끄러워 한다.
사무실 이사했다. 6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면서 책상도 좁아지고, 책장도 작아지고, 서랍은 없어지고, 의자는 다운그레이드. 사실상 거기서 일하는 게 주던 최대의 메리트가 사라졌다. 분명 문쪽 자리로 잡아두었는데 정말 착각이라도 한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어영부영 제일 안쪽 창문 자리로 들어가게 됐다. 가운데 아니면 된다 했던 말이 있어서 다시 옮기라고 말 못하고 주저앉게 됐는데 그마저도 좀 짜증이다. 일부러 그런 거면 애초부터 말을 하지 싶고, 헷갈린 거라면 존나 빠가 아닌가 싶다. 말로 하고 지나간 것도 아니고 카톡 대화였는데 다시 열어만 봐도 알지 않나? 막상 가서 보니 생각보다 좁아서 충격이라도 먹었나. 시발.
옮긴 사무실은 전면 유리창이라 들어가있으면 매우 티가 난다. 3층이라 사람이 매우 많이 오간다. 문 잠금장치는 깔끔하게 닫히지 않는다. 에어컨은 제대로 냉방도 되지 않고, 온도 설정도 잠겨있다. 책장 늘려준다고 해도 거기 가 앉아서 공부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 뭐 생각해보면 연구하라고 준 자리 아니고 일하라고 준 자리니까 꺼지라고 하면 꺼지는 게 맞긴 맞지. 똑같이 인턴 취급할 거면 인턴한테도 똑같은 일 시키지 뭐하러 따로 쓸까. 사실 이렇게까지 짜증낼 일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존나 짜증력 풀차지 상태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지하철역 출구 나와서 500미터 걷는 사이에 마스크 안 쓴 할재 두 명이나 지나쳤다. 존나 쓰레기 같은 놈들. 이런 것들도 코로나 걸리면 죽지 말라고 온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살리려고 애들 쓰겠지. 사람 미워하기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