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글을 잃은 사람처럼 지낸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되 글로 말하지 않는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메일 두 통을 썼다. 이메일인데 ‘통’이라고 쓰려니 어딘가 어색하다. 편지는 왜 한 통, 두 통일까. 논자시 신청을 취소했다. 다음 주로 다가온 시험을 다시 반 년쯤 미뤄버렸다. 주말 사이에 거의 결정한 일이었는데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한참 망설여야 했다. 지난 상담에서 종결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쯤 마무리를 하면 좋을까요, 하는 질문에 개강할 즈음이면 좋겠네요, 하고 대답해서 이제 네 번의 상담이 남았다.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서 조금 뿌듯하다고 대답했다. 첫 번째 상담을 마칠 때보다 어딘가 한 구석이라도 좀 더 나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도 뿌듯하네요, 라고 말해주었다. 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내온 것 같은데, 또 생각보다 별일이 없는 일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M이 한국에 다녀갔다. 그러고나니 마침 생각났는데, 오늘 아침 회의에서 세 명이나 결혼을 상당히 현실적인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놀라울 따름. 결혼이 내내 남의 일만 같은데, 이제는 완전 저멀리 남이 아니라 근처의 남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축의금을 내려면 현금을 모아야 한다. 달에 5만원씩만 해도 반 년은 걸리겠는데, 망했다. 과외가 자꾸자꾸 밀리기를 반복해서 생계가 엉망진창이다. 빨리 어디서든 돈을 줬으면 좋겠다. 돈 받아야 할 데가 다섯 곳이나 되는데 왜 나는 쌩짜 알거지 신세를 면하지 못할까. 아리송한 일이야. 어제 아빠가 사준 커피를 다 못 먹은 걸 텀블러에 넣어두었다가 학교에 고이 가져갔다. 사무실에 있는 텀블러를 (무려 n주만에) 씻고 얼음을 가득 채워 올라와서 커피를 옮겨 담았다. 옮겨 담은 커피도 다 먹질 못해서 또 그대로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온 지 4시간 가까이 됐는데 여전히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채로 책상에 놓여있다. 습관처럼 음료수나 커피를 사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바깥에서 끼니를 때우느라 돈을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집에 돌아와 쌓아뒀던 컵반 하나를 먹고 빨래를 돌렸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짬뽕이 먹고 싶니? 회도 먹고 싶다. 광어 출하가격이 생산단가보다도 떨어져서 양식업계가 망할 위기라는데 신기하게 내가 먹는 광광우럭따는 도무지 싸지질 않네. 제주산 광어가 국내 소비량의 6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요하니까 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건 요구사항 중에는 내수부진 만회를 위한(?) 군 납품 수량을 현행 100톤에서(아마도) 500톤 이상으로 늘려달라는 항목이 있다. 근데 광어는 회 말고는 먹어본 일이 없는데 군부대에 납품되면 어떻게 해먹는 거지? 매운탕 끓여 먹나? 집에 돌아와 빨래를 돌리고, 널어져있던 빨래를 걷어 개고, 미스터션샤인을 둘하고 반 편쯤 보고 다시 빨래를 널었다. 오늘 아침에 아주 오랜만에 일찍 눈을 떴어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겁다. 늦었지만 기왕 이렇게 시험 안 칠 거였으면 진즉 좀 더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많이 읽을 걸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 솔직히 그런 책들도 잘 안 읽었으리라는 거 안다. 개강 후 일정이 조금 무섭기도 하고, 괜히 걱정되기도 한다. 어제 본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강단이는 글 다 써놓고 책 못내겠다고 나자빠진 작가에게 이렇게 위로를 한다. 시작하기 전까진 걱정도 두려움도 많은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잘 하고 싶고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렇다고. 뭐 대충 그런 말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나면 괜찮아지려나? -지겠지? -져야해. -질 수 있어. 눈꺼풀이 무거워진 김에 하는 얘긴데 나는 ‘자울자울하다’는 말이 좋다. 눈꺼풀이 내려앉는- 듯! 하다가 또 갑자기 눈을 바짝 떴다가, 다시 또 내려앉다가― 치켜올라가는 리드미컬함을 연상시킨다. 읽을 때도 잔잔하지만 분명한 리듬을 살려야만 할 것 같아. 이제부터 이상의 날개를 읽어야겠다. 필사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단정함과 견고함이 못내 아까워서 쉽게 펜을 들지를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