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8. 실로폰 소리가 난다.

오후 세 시가 넘어서 학관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 안에서는 지나간 점심의 흔적들이 한창 씻겨나가는 중이다. 컵은, 가장 튄다. 착착착착 씻긴 컵이 하나둘씩 쌓이거나 혹은 부딪히거나 어딘가 쨍그랑쨍그랑 하고 있으면, 실로폰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아침 수업에 가지 않았다. 엊그제 널어둔 빨래를 개고, 또 다른 빨래를 돌려놓고 간신히 씻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로 온몸을 익혔다. 아직도 흐를 콧물이 남아있다니 젠장. 어제 엊그제 수업에 휘갈겼던 비체(abject)가 생각난다. 괜히 썼어, 그런 걸. 흘러나가/오는 모든 것을 혐오할 수 있다. 씻고 나와 미스트를 뿌려놓고 빨래를 널었다. 위아래를 기모로 뒤덮었다. 기모슬랙스에, 기모티에, 두툼한 셔츠에, 또 얇은 자켓을 걸치고,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었다. 동장군은 깡깡인데 내 몸은 벌써 겨울이다. 어제 받은 약은 영 시원치 않은 느낌이다. 먹어도 먹어도 증상이 멎질 않는다. 낫게는 못 해줘도 증상은 멈추게 해줘야지. 그러라고 약도 짓는 건데.

상담에 가서 예정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상담이 늦게 시작했고, 조금 덜 늦게 끝났다. 어제 오늘 사이 급격하게 몰아쳤던 아연의 느낌을 쏟아냈다. 불쾌한 것들. 쾌―할 수 없는 것들. 뭘 바랐는가, 나는. 나는 무얼 바라 /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별 것 아닌 일로 너무 오래 이야기했다, 그렇게도 생각했는데. 지금 또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 얘기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별 것 아닌 일이 아닌 것이다. 빨리 한 주가 지나서 다음 날 눈 뜨면 비행기 안이었으면 좋겠다.

뒤늦게 롱패딩 주문을 넣었다. 내 돈도 아닌 걸로. 사무실에 가고 싶지 않아 74동에 앉아있다. 불빛이 노랗고 시야가 가끔씩 아득하다. 아까 집에서 나오는 길엔 닥터마틴이 사고 싶어졌다. 왜 벌써 겨울일까. 선물 받은 유자차를 마시고 있다. 유자차 한 잔만큼의 시간을 선물받아, 나는 이 선물을 이렇게 쓰고 있다. 뭔가 더 쓰고 싶은 말이 있던 것만 같은데.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