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글이다.
이렇게만 읽고 쓸 수 있어도 참 좋겠으나, 어쨌든. 하나의 길고 긴 스토리도 아니고 해서 길게 적을 것은 없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정희진 특유의 시선, 관점, 해석, 그리고 만나본 것은 한번 뿐이지만 글 속에서마저 풍겨나는 그 말투, 몸짓, 표정이 하나같이 모두 생생하다. 읽고 싶은 책마다 라벨을 붙였는데 너무 많다. 차곡차곡 붙여 놓으면 언젠가는 이걸 읽을만한 시간이 될까. 과연(…?). 몇몇 인상적인 건 역시 스크랩-북에 모아뒀다. 월간 비범죄화 창간호는 봐도 봐도 웃기다. 정희진의 코멘트도 웃겼다. 그 많고 많은 단체 중에서 ‘~남성연대’ 빼고는 다 회원이라며.
목차의 분류 역시 대단히 ‘정희진스럽다’. 1장 고통, 2장 주변과 중심, 3장 권력, 4장 안다는 것, 5장 삶과 죽음. 이런 머리를 가지고, 이런 감수성을 지닌 채,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살다가는 나는 아마도 돌아버릴 게 분명한데, 무슨 재주를 지녀서 이 와중에 중심을 잡고 살아갈까 싶을 정도로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가장 부러운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이렇게도 산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는 점. 말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온 몸으로, 온 글을 통해서, 온 정신이 그러하다는 걸 증명하면서 사는 이인 것 같다. 당연히 지근거리의 인물이 아니니 내가 이해하는 지점에도 한계는 있겠지만, 이만하면 과히 대단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라는 표현이 참 좋다. 그런 책이 간혹, 정말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