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잃었다. 나침반도 없고 해도 없어서 어디로 가는 길이 모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가기에는 그간의 발걸음이 너무 빨랐어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출발점은 어디었을까. 어떻게든 다시 찾아가볼테니 두 번째 라운드를 주면 안 되겠느냐 억지라도 쓰고 싶지만 안 될 일이지. 그러고보면 그때 그 시절 내 앞에 놓여있던 그 길은 그저 내 마음 속에서나 ‘있다고 믿었던’ 환상 같은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살다가 도대체 뭘 할 수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관계다. 너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그런 관계. 물론 뜬구름 잡는 소리 같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또 전연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지 않던가. 그런 관계로부터 오는 성장의 기쁨과, 그로 인해 더욱 깊이를 더하는 관계라는 것은, 내게는 특히 더, 의미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관계의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런 관계에 대한 갈증 역시 곱으로 쌓인다. 나는 과연 이 갈증을 얼마나 더 묻어놓고 지나갈 수 있을까.
그냥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익숙한 지금을 깨뜨리지 않고 싶다는 내 게으름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건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든다. 탓할 수도 없다. 먼저 바닥나기 시작한 건 내 쪽이니까. 계획 없음, 깊이 없음, 반성 없음, 그리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둘러쳐진 무한한 비관. 그 모든 게 나로부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