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헌다1 통합진보당 해산 인용판결 중 결론 및 김이수 재판관 반대의견

8. 결론

가.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해산을 명하고,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들 모두의 국회의원직을 상실시키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9.와 같은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과 아래 10.과 같은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조용호의 보충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나. 이 사건은 우리 헌정사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사건이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정당해산제도가 없는 국가들도 많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설득과 같은 민주적 방식이야말로 헌법의 근본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제어하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인식을 달리 하여, 우리의 헌법제정자들이 헌법에 정당해산제도를 규정해 두었다면,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에 대한 우리 헌법의 해법이 그렇지 않은 헌법의 해법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해산결정은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이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의 민주 헌정에서 보호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일 뿐이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새롭고 대안적인 생각들이 얼마든지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이 결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편, 우리는 피청구인의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우리의 결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지난 1년간의 오랜 심리 끝에 나온 것이고 우리 재판부에서도 다른 시각이 있는 만큼, 과거에 위 주도세력과 무관했던 피청구인의 일반 당원들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 공세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결정을 통해 향후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중 아래 한층 더 성숙한 민주적 토론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9.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

마. 결론

(1) 우리는 민족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을 희망하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사회는 제반 양극화 현상과 더불어 이념적 대립의 골도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진보정당의 역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정당해산제도의 의미를 엄중히 되새기게 한다.

(2) 오늘날의 정당정치에서 진보정당은 통상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삼는 정당을 일컫는다. 이들 이념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수반되는 모순이 심각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인류의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 대체로 뜻을 같이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인류의 보편적인 경제질서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는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라는 비판적 이념을 공유한 정당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때로는 집권을 하기도 하면서 특정한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입지는 미약했다.

진보적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의 연계성이라는 혐의를 씌움으로써, 비교적 손쉽게 진보정당의 지지기반과 비판적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해방 후 극심한 좌우대립을 겪고, 그로 인해 남북의 분단과 동족상쟁의 전쟁을 경험한 후 전면적으로 등장한 반공 이념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는 북한이 보여준 공산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연계라는 막연하고 근거없는 혐의로 조봉암의 진보당을 등록취소시킨 과거의 사례는 후대의 진보정당 운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선거운동 그리고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는 법제 하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만들 수도 없었다. 거기에는 노동자들의 계급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못한 데다 노동운동계 내부가 분열하였던 탓도 있었다.

그런데 정리해고 법제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노동운동계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때마침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에 대한 금지 등이 해제되면서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에 진출하였고, 한때는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20%에 이르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에 여러 진보적 의제, 즉 복지확충과 경제민주화 등을 제시하였고,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공공교육이나 공공급식, 공공의료 등의 복지정책은 여당과 제1야당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의 유력후보들이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기도 하였다. 이 역시 진보정당의 주장이 수용된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내부의 주도권과 정치노선을 둘러싼 갈등 끝에 2008년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으나,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의 진보대통합론이 힘을 얻음에 따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는 2011년말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을 창당하였다. 피청구인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3석의 의석을 얻는 등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엄정한 대응 조치를 통하여 당을 개혁하는 데 실패하고, 중앙위원회 석상에서 충격적인 폭력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국민들이나 진보적 사회운동세력들로부터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부정경선 사건과 관련하여,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기, 김○연 의원에 대한 제명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결국 다시 분당되고 말았다.

그리고 5.12. 모임에 참석한 이○기와 그를 지지하는 소규모 집단이 한 발언은 국민의 정서에 비추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피청구인은 해산심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의제 제기에 앞장서 온 역사를 가진 정당에 해산심판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비록 날아가는 새의 좌우날개처럼 균형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논쟁의 틀이 기울어진 접시처럼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진보정당은 또한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따라서 진보정당이 민주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진정한 사회통합과 안정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3)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진압 이후 정치․사회운동의 주류는 국가권력과의 타협을 통한 개혁주의 노선을 비판하고, 보다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강성 권위주의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았고, 그 안에서 나타난 이른바 엔엘(NL)과 피디(PD) 노선은 투쟁을 위한 슬로건이자 하나의 레토릭(rhetoric)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전되고, 나아가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점차 공고해졌다. 그리고 90년대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더 이상 극단적 혁명노선은 보편적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여 엔엘(NL)과 피디(PD) 노선도 각각의 기본노선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며, 혁명적 급진성 내지 극단주의적 성격을 배제하여 왔다. 유럽에서 발전한 사회민주주의나 자유주의 이론으로부터 분기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등을 접하며, 민주적․제도적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체제나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 점차 세력을 얻었으며, 이는 진보정당 운동으로 이어졌다.

민주노동당은 위와 같이 혁명적 노선을 버리고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엔엘(NL)과 피디(PD) 노선의 결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들은 당내에서 자주파와 평등파로 불렸다. 이들은 많은 사안들에서 의견을 같이 하였으나, 북한 관련 문제나 연대․연합의 범위, 사회주의 지향성 등에 관하여 일부 다른 입장을 보였으므로 당내에서 정파간 다툼을 벌이기도 하였고, 그에 따라 당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파간 패권 다툼 양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민족 모순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엔엘(NL)적 문제의식에서 민족 공조, 평화 통일을 중시하였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가장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며, 경우에 따라 ‘친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핵문제나 인권 문제, 3대 세습의 문제와 같이, ‘진보’의 관점에서 또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 비추어 비판적 의견 표명이 당연한 듯 보이는 사안에서 자주파가 취한 태도, 즉 소극적으로 유감을 표시한다거나 침묵하는 모습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침묵이 곧 추종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4) 나는, 자주파가 주축이 된 피청구인의 목적이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법정의견의 판단이 정당해산심판의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 적용한 결과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 의문은 설득력 있고 확실한 증거에 기초하여 사실인정을 하였는지, 판단자료가 되는 여러 표현물의 해석에 있어 전체적인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였는지, 사실관계에 바탕한 추론이 경험법칙과 논리법칙에 맞는 것으로서 논리적 비약이 없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우선시하는 원칙을 지켰는지, 가공되지 않은 퍼즐조각을 사용하였는지, 그리하여 숨은 목적을 구성해 낸 것이 아니라,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법정의견에서 보이는 문제점들 중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법정의견은 누가 피청구인의 주도세력인지를 확정하고, 그들의 이념적 지향점을 밝힌 다음 그들이 인식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의미를 도출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른 결론은 1단계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추구하는데, 그 사회주의는 내란 관련 사건에 비추어 보면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추론은 ‘주도세력’이라는 자의적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우선, 당을 주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아니하다. 당의 일상적 업무를 주도한다는 것인지,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주도한다는 것인지, 당이 치루는 선거에서 후보자 선정 등을 주도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또한 주도세력이라고 하는 범주도 뚜렷하지 않다. 법정의견은 민혁당 또는 민혁당이 지도하는 조직의 조직원이었던 사람들이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 및 이들과 이념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당원들을 주도세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혁당의 조직원, 민혁당이 지도하는 조직이 설득력 있고 확실한 증거에 의하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기동부연합 등의 주요 구성원을 특정하는 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고, 주요 구성원과 그 밖의 당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념적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주도세력의 개별 구성원이나 그 외연(外延)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

이어 법정의견은 주도세력의 이념적 성향을 가려내고 있다. 그런데 주도세력의 현재의 이념적 성향 내지는 지향점을 가리려면, 현재의 이들의 활동이나 발언이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행적이나 전과는 현재의 활동과 발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부수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정의견은 10여 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형사 판결이나, 오랜 시간 피청구인 구성원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피청구인 구성원들의 과거와 현재의 사상, 신념을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법정의견이 반국가단체인 민혁당의 조직원이나 하부조직원, 민혁당이 지도하는 단체의 조직원 등으로 인정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민혁당 사건과 관련하여 기소는 물론 수사조차 받지 않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타인에 대한 유죄판결문에 이름이 거시되었다는 이유로, 또는 이 사건에서 그에 부합하는 증언이 있었다는 이유로 민혁당 관련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활동의 배경에 북한에 대한 동조의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피청구인 당내에 아직도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를 고수하고 있는 자주파가 있을 수 있음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 주체사상을 신봉하였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그러한 사상이 내면화되어 있다고 판단하려면, 이○기가 5.12. 모임에서 한 발언과 같이, 현재 그의 활동에 비추어 과거 그가 가졌던 사상이 유지되고 있음이 드러나야 한다. 즉, 현재의 활동내역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과거의 활동과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비로소 내면화된 신념, 신조가 어떤 것인지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최소한의 분석조차 없이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이념적 지향점과 사상이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칙에 의하여, 나이가 들어가면서 청년시절의 사고가 변화함을 알고 있다. 또 시대의 사조는 사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바뀌어 가고, 그것이 동시대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옴을 알고 있다. 과거 지니고 있던 사상이나 신념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에만 그 변화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전향선언을 하지 않으면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추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보려면 납득할 만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피청구인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피청구인 구성원들의 사상, 이념을 추단해내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법정의견의 사실인정 및 논증의 정확성과 엄격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한 피청구인의 주장을 배척하는 이유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5) 5. 12. 모임에서 이○기와 김○열, 이○호 등이 쏟아낸 발언들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것이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나 전쟁 시 예비검속이라는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바탕에 두고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북한과 힘을 합쳐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미국과 맞서 싸운다거나 대한민국의 국가기간시설을 공격한다는 발상은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터무니없고 피청구인의 기본노선에도 어긋나는, 이○기와 그를 지지하는 소규모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념이나 신조는 그들의 신념일 뿐이고 그것이 곧바로 정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기나 그를 지지하는 소규모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신념이나 목적이 정당의 숨은 목적, 진정한 목적이 된다는 법정의견의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 당의 강령 제정과 개정은 당대회 의결사항이고, 많은 당원들은 성문의 강령을 당의 강령으로 알고 있고, 많은 지지자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피청구인은 당대표나 최고위원, 국회의원의 개인적 결정이 그대로 관철되지 않도록 당원과 당원을 대표하는 대의원, 중앙위원에게 당헌과 당규로써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나 피청구인은 창당 이래 당원을 중심으로 당내에서 활발한 토론과 회의를 거쳐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해왔다. 만일 1인 지배가 인정되는 정당이 있어 그 1인이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경우라면 법정의견과 같은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정당에서는 지도자의 의사가 바로 당의 의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내란 관련 사건에서 드러난 이○기의 발언 등에서 찾아낸 북한식 사회주의를 피청구인의 주도세력의 목적, 나아가 피청구인의 ‘숨은 목적’, ‘진정한 목적’으로 단정하였다. 이 결론은 피청구인 자체를 반국가단체로, 그리고 당원 전체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더 나아가 피청구인을 지지했던 국민들을 반국가단체의 지지자로 규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법정의견이 설정한 주도세력에 속한 당원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공인해 주는 것이 된다.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이 붉은 낙인을 찍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6)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민중주권은, 피청구인의 계급․계층적 기초에 해당하는 일하는 사람,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주권을 실질화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주권에 대한 피청구인의 비판은 헌법상 주권재민의 원리를 실질화하는 데 실패하고 소수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자유방임적 정치․경제 현상에 대한 것일 뿐, 기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 원리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민생 중심의 자립경제체제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복지,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와 모순되는 바가 없다.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인 이상과 가치를 일부 포괄하는 광의의 사회주의 강령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피청구인은 선거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고 있지, 폭력혁명 또는 폭력적 방법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7) 나는, 근자에 이르러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몇 가지 징표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방어를 목적으로 한 해산결정이 87년 헌법 개정 이후 꾸준히 진전된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우리사회의 균형을 위한 합리적 진보의 흐름까지 위축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정당들의 미약한 전통은 우리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 속 약자들의 정치적 이익은 공적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장구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서구의 많은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진보정당의 정치적 역할이 미약했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그 만큼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피청구인의 주장이 소수의 지지를 받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언뜻 보기에 고개를 젓게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 역시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하게 만드는 자원임은 재차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 주장들이 인류의 지성사에서 오래도록 전수되어 온 유력한 지적 전통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에도 다양한 변주들을 통해 꾸준히 통용되는 정치적 입장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고 받아들인 나라는 융성하였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만 고집한 나라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는 법이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민주주의야말로 바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우리 헌정질서의 한 축을 이루는 법치주의 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국가의 안보를 위해하는 개인 내지 집단에 대한 제재는 기본적으로 형사절차의 엄정한 집행을 통해서 하여야 할 것이고, 헌정질서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민주주의 원리를 경시하지 않는 한, 공당에 대한 준엄한 질책은 선거라는 정치적 심판을 통해 함이 마땅하다.

또한 당의 기본노선에 어긋나는 일부 소속 당원들의 일탈행위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의 자기비판역량과 부단한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피청구인의 목소리를 우리의 정치적 공론의 장에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이라 할 것이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려는 자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우월성과 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헌법이라는 탐조등(探照燈)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찾아 나설 때,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바탕이자 토대가 되는 “자율과 조화”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헌법 전문의 근본정신이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찾기 어렵고 서로를 겨누는 거친 언사들이 난무하는 우리의 삭막한 현실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주는 우리 헌법의 가르침도 바로 이것이다.

(8) 나는, 헌법 제8조 제4항이 요구하는 정당해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는 피청구인의 문제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피청구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 읽기 : [결정문] 2013헌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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