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출근을 시작했다. 이제는 글을 담백하게 써보아야지. 9월 첫날은 화요일이었다. 마치 월요일 하루를 공으로 얻은 것 같은 한 주간이었다. 생각보다 한층 더 지루하고, 생각보다 한층 더 엄숙한 업무환경이었다. 점심을 먹는 사이에 느꼈다. 아, 잡담할 시간 같은 거 없겠구나. 그래도 이제 보름 남짓 출근을 하다보니 이건 또 이대로 좋은 맛이 있다. 부질없는 술도 안 마시고, 부질없는 야근도 안 하고, 부질없는 결재 대기도 없다. 일을 하는 시간에는, 일을 한다. 지극히 정상적이면서, 지극히 비현실적인 그런 사무실. 이 서울 바닥에도 이렇게 일을 하는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저녁을 먹은 후에 여유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예전 그곳들에서와 같이 나인 투 식스 사이에 딴짓을 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역시 나쁘지 않다.
할머니가 입원을 했다. 벌써 한 달은 묵은 소화불량? 비슷한 것이 혼자 계시는 동안 더 심해져 서울로 (반쯤) 실려오셨다. 입원을 하셨고, 검사를 하셨고, 또 검사를 하셨고. 멍청한 손녀(년)는 주말 내내 잠만 퍼자다가 월요일 퇴근 후 저녁, 엄마의 닦달에 병원엘 갔다. 못 돼 쳐먹은 것. 내가 생각해도 아주 몹쓸 짓이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내일이면 점심 먹고 퇴원 땡! 하신단다. 그러니 퇴원을 하기 전에 가서 한번은 얼굴을 보라는 뭐 그런 지령. 할머니가 얘기를 하다말고 오늘 했던 내시경 검사 얘길 하면서, “마취하고 못 일어나면 그게 끝 아냐, 그래서 내가 작년에 콩을 어쩌고(…)” 하시길래 문득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도 틀린 말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단 사실을 느끼는 것은, 내게는 너무 먼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일이다. 할머니는 어느새 그런 시절을 살고 계신거다.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것이 어쩌면 이미 한참 전의 일일지도 모르는데. 나만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거겠지. 불효녀.
내가 갈수록 느닷없이 죽음을 깊이 생각하고, 또 몸서리치게 두려워하는 것이 결국은 그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면 안 되는 줄 모르지 않는데. 무섭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이런 글이 되었을까. 담백한 글은 오늘도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