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이여 타인의 소임 앞에서 침묵하라!”……
“침묵하라 법학자들이여!”……
한 시대의 시작과 끝에 두 가지의 기묘한 ‘침묵하라’는 요구가 있다. 처음에는 법학자로부터 비롯되어 정전론(正戰論)의 신학자를 향한 침묵의 요구가 있다. 마지막에는 순수하고 남김없이 세속적 기술성으로 전향하라고 법학자에게 강요한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침묵하라’는 요구의 관계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단 이 한 시대의 시초가 공포의 시대였으며 종말도 그에 못지않은 공포의 시대라는 사실을 음미해보는 일은 필요하며 유익하다. 모든 상황은 스스로의 비밀을 갖고 있으며, 모든 학문도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유럽 공법’에 대한 최후의 자각적 대표자이자 실존적 의미에서 최후의 교사이고 연구자이며, 그 종말을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가 해적선 항해에서 겪었던 식으로 체험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는 침묵할 때이며 장소다. 침묵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침묵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또한 우리가 신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음미한다.
―칼 슈미트, 『옥중 인사』(Ex captivitate salus, 1950).
그래서 슈미트는 ‘마지막 법학자’이다. 이때 ‘법학’이란 무수한 법규범의 중첩으로 이뤄진 법규범의 총체를 주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공포 속에서 내전을 종식시켜 지상의 평화를 지탱하는 규범체계의 생성과 존립을 근거 짓는 일이다. 따라서 슈미트에게 유럽 공법이란 공포로부터 비롯되어 내전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작동한 구체적 결정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45년, 유럽 공법을 탄생시켰던 구체적 결정은 효력을 다했고, 그 결과 또 다른 공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슈미트가 경애하여 마지않았던 16~17세기의 법학자들은 종교내전이라는 공포에 맞서 주권국가와 유럽 공법을 탄생시켰다. 공포로부터 태어난 쌍생아는 20세기에 이르러 수명을 다하고 또 다른 내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16~17세기의 법학자들과 달리 슈미트는 침묵을 선택했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에서 노예반란으로 해적선 선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베니토 세레노에 스스로를 중첩시킴으로써, 슈미트는 ‘유럽 공법’이라는 침몰하는 배의 마지막 선장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 앞에서 침묵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