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쌓여있던 to do를 사실상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고 온 정신과 시간과 집중력을 이사에 때려부은 결과… 나는 화요일 과제를 거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목요일 발제는 어떻게든 해야겠어서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야지 했는데 눈을 뜨니 다섯 시간이 지나있고… 그러고도 워드가 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넷질을 한다. 간만에 다 망해버려라 같은 느낌인데, 약간 좀 아니 사실은 많이 어쩌면 꽤 심각하게 위험하다 싶다. 약을 먹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지만, 많이 가라앉지도 않게 해준댔다. 근데 그냥 행복해지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술?) 큰 그릇, 아니면 뜰채 이야기가 자꾸만 맴돈다. 내 행복은 ‘짠’하고 나타나기 전까지 때려넣어야 할 투입량이 너무 많다거나, 아니면 애초에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술독에 빠진 뜰채가 되면 좋겠다.
근래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내 글투가 점점 쓰레기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한다. 부질없이 호흡만 짧고, 거칠어지는 듯하다. 실상은 온전히 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소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데도, 매끄러움 따위는 어디 저멀리 던져놓은 것 같다. 오후엔 과외를 가야한다. 여섯 시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 돌아와 내일 아침이면 새 일터로 첫 출근을 해야 한다. 내일 내야하는 과제는 아마, 정말로 손도 대보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시 증발해버리고 싶다. 도망갈 수 있을까. 어디에 스크랩된 무슨 블로그를 들어갔다가 엉뚱하게 블로그 제목을 보고 딴 생각을 했다.
泉櫚靜處.
15년 전쯤 만들었던 이름이었다. 이름을 풀어낸 이름.
이사를 하다가 까진 손가락에는 꾸역꾸역 딱지가 들어앉았는데, 상처 위로 앉았다기 보다는 패인 상처에 자리잡았다. 딱지 옆으로는 빨갛게 부어올라있고, 만지면 혹은 물이 닿으면 아프다. 아프다. 왤까.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물어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냐. 젠장. 머리를 잘랐다. 아주 짧게, 재작년 이맘때쯤 처럼. 엊그제 잘랐는데 아직도 귀에서 바리깡에 튕겨나간 머리카락이 나온다. 계속 힘을 빼려고 애쓰는데, 그러다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릴 것 같다. 무섭다. 남들이 나만큼 멍청하지 않아서 더 그렇다.
답은 플라톤과 니체와 아도르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