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낯선 근대의 거리, 불편한 역사의 현장
통감관저. 경술국치의 현장. 남산 중턱의, 터도 알아볼 수 없는 통감관저. 왜성대에 솟은 조선총독부. 과학관으로 변모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만 관저. 인왕산의 동아청년단결. 39년 15회 대일본청년단대회. 서울을 내려다보는 인왕산 바윗자락에 새겨진 치욕의 글씨. 태화관(명월관지점). 3.1 운동의 출발. 기미독립선언서의 낭독장소. 이완용의 집터. 과거 순화궁 자리였던 곳을 패망 즈음에 이완용이 받아먹고, 더 넓혀 이사를 가면서 남게 된 자리에 여관이 세워진 것. 최초의 태화관. 여관으로 시작해 요릿집으로 변모. 태화관으로 계속 장사를 하다가 당대 유명했던 또 다른 요릿집 명월관에서 건물을 사들여 명월관지점으로 바뀜. 태화관은 딴 데 가서 또 장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기생+요릿집의 대표주자. 독립관. 매국노 송병준의 담배공장이 되다. 성광? 독립관+독립문 세트. 사용하던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산된 뒤 공실로 남아있다가 한때는 일본 군대의 훈련지가 되기도 하고. 결국 송병준에게 넘어가 담배공장으로 활용. 대한제국 궁내부의 게스트 하우스, 주차장터. ‘한국주차일본군사령관저’=대관정. 외국인들의 임시 처소. 을사조약의 현장 수옥헌 혹은 중명전. 양식 2층집. 황실도서관 자리. 중명전을 비롯한 그 권역 전체가 도서관 자리. 현존하는 중명전 건물은 언제 건립됐을까? 두 번의(?) 화재. 초기 단층 건물이었다가 화재 이후 다시 재건. 이후 원형을 잃을만큼 이상하게 복원됐다가 다시 재복원. 요근래 오픈. dr.khu랑 갔던 곳.
제2부 섣부른 역사고증, 때로 만들어진 전통
원구단? 환구단? 원구단 승! 으로 주장. 원구단에 사용하는 한자에는 두 가지 음가가 있다. 원과 환이 그것인데, 당시 모두가 다 ‘원’으로 활용했던 것. 독립신문에서 간혹 ‘환구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긴 힘들 수준이고, 오히려 당시 ‘환구단’이라고 표기한 것이 오류가 아니었냐 하는 의문. ‘원구’의 뜻 자체도 따로 있고. 황궁우 옆에 놓여진 돌북은 본디 ‘석고단’으로 조성되려던 것. 다만 석고단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누각? 정자? 만 따로 남아 어딘가에 옮겨지고, 돌북은 황궁우 어디에 또 버려져있었고. 원구단, 황궁우, 석고단, 조선호텔. 도량형법이 대한제국의 제1호 법률? 아니다. 당시는 매년 법률의 제정 때마다 호수를 새로 붙였다. 예를 들면 2011년 제1호 법률, 12년도 제2호 법률, 13년도 제1호 법률 하는 식으로. 따라서 도량형법이 생기기 전 이미 최소한 13개? 가량의 법률이 제정, 공포됐다. 대한제국 시절 전차 개통이 동양 최초라는 주장도 사실은 아닌 것으로. 도쿄보다는 빨랐으나 교토보다는 늦었다. 심지어 베트남? 어딘가에도 우리보다 빠른 전차의 개설이 있었다. 남대문 홍예의 통로 바닥이 높아진 것이 전차가 지나가는 것 때문이라는 고증도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전차가 부설되기 한참 전부터 남대문 홍예의 바닥은 높아져있었다. 그랬다면 그 홍예의 바닥을 높인 것은 전차 때문이라기 보다는 당시 무언가 우리 민중이 필요로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고, 그렇다면 그것은 충분히 보존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고종황제 영친왕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은 가짜. 조작한 합성.
제3부 땅 이름에 관한 오해 혹은 진실
14. ‘호미곶(虎尾串)’, 암만 봐도 억지스런 땅 이름 – 동을배곶은 왜 난데없이 호미곶으로 둔갑했나?
15. 가수 배호는 ‘삼각지(三角地)’의 유래를 알았을까? – 일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세모꼴’ 지명의 흔적
16. 창덕궁과 남산총독부를 잇는 가교, 관수교(觀水橋) – 청계천 관수교라는 이름의 부활은 과연 합당한가?
17. 인천 송도(松島)는 과연 또 다른 왜색지명일까? – 대전?목포?청진에도 ‘송도정(松島町)’이 있었다
18. 과연 유릉(裕陵) 때문에 ‘능동(陵洞)’이 생겨났을까? –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능동의 지명 유래에 대한 재검토
19. 왜색지명 ‘태합굴’, 잠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 – 이른바 ‘통영태합굴해저도로’에 대한 자료 고증
제4부 뒤틀어진 식민지시대의 일상 속에서
국회의원 봉급=세비. 왜? 일본제국 의원법에서 출발한 표현. 시간의 주권. 동경135도, 일본조선만주대만의 표준시. 일본은 최대 전성기 최대 다섯 개의 표준시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였다. 우리나라 본디 시간 기준은 그리니치 천문대로부터 동경 127도 30분이었다. 때문에 일본과는 대개 30분 정도의 시차가 존재했는데, 나중에는 강제로 병합되어버림. 80년 전에도 우량아 선발대회는 있었다. 매일신보 주최의 유유아심사회. 보육에 대한 관심의 증대. 유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덕수궁 전하=순종의 말년 취미는 당구였다 한다.
작성일. 2013. 0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