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사 좀 모양다운 모양을 갖추게 되어서, 지울까, 하는데 다 지워놓고 보면 또 이마저도 아깝겠지 싶어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글을 쓰는 방법을 마치 잊은 사람처럼 멍하니.
일을 그만두고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했다. 예정에도 없던, 평생 가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헬스를 끊어 운동을 시작―사실은 일을 그만두기 전에 한 등록인데 첫 운동을 퇴직 후에야 할 수 있었던거지만 어쨌든―했다. 처음 운동을 하러 간 날, 선심쓰듯 해주는 인바디 측정을 받고 솔직히 조금 으쓱(ㅋㅋ) 안 했다고 하면 구라 뻥이고. 키에 비해서 체지방은 적고 근육량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다. 물론 숫자로만 놓고보면 체지방이나 근육량이나 토탈 체중이나 죄다 평균 범위의 가장 왼쪽 끝, 간당간당이다. 어쩌다보니 달랑 한 분 앉아계시던 코치님이 미스터선발대회 나가도 될만큼 짱크고 우락부락한 아재였는데, 인바디 이후 짧은 상담 시간에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저는 운동 개뿔 하나도 몰라요 엉엉엉” 하는 신호를 보내니까 30분 정도 시간을 더 내서 스트레칭, 스쿼트 같은 몇몇 운동 자세들을 가르쳐줬다. (제비랑 같이 갔으면 아마, 아니 틀림없이 이런 서비스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운동을 좀 하고 또 시키는대로 올라가 런닝머신을 적당히 뛰는 걸로 첫 헬스장 운동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ㅋ) 마트/백화점엘 갔고, 실직자 주제에 십만원 어치를 훨씬 넘는 운동복을 샀다. 내 통장 눈 감아.
몇 년간 아파트 베란다에 처박혀있던 자전거를 꺼내어 완전히 손을 봤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각보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잘못 연결돼있던 브레이크 라인을 손보고, 너무 오랫동안 타지 않아서 빠져버린 타이어 바람도 빵빵하게 채워주고, 찢어져 밖으로 달랑달랑 굴러다니던 림테이프(?)도 새로 갈아주고, 어딘가 나도 모르는 새에 휘어있던 타이어 커버도 제자리로 돌려놓고, 또 너무 오랫동안 본체에서 떨어져있어서 브라켓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을 염두도 못냈던 바구니도 다시 달았다. 이 모든 걸 단돈 만오천원에(!) 해결하고 나서 새삼 이 멍청한 짓거리를 한 지가 대체 얼마나 오래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자전거 상태를 보자마자 한숨 아닌 한숨을 쉬었던 사장님은 “그때는 이게 좋은 자전건지도 모르고 이렇게 뒀죠? 이제 완전 새 자전거 하나 생긴거에요.”라고 말해줬다. 그 자전거를 그대로 끌고 나와 근처 중학교에 가서 올라탔는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자전거 위의 나는 내 몸이 감당이 잘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 시도가 이 워드프레스인데. 7월 4일 약속 때문에 시내에 나갔다가 서점엘 들렀다. 그리곤 그냥 심심풀이로 이런 거나 해보면 좋겠다 하고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 만드는 책 한 권을 냉큼 사왔는데, 분명히 처음 살 때만 해도 ‘아 이걸로 뭔가 내용은 없어도 샘플용 홈페이지 같은 걸 만들어보면 좋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문제는 그날 술 실컷 마시고 다음날 정신 차린 뒤에 차근차근 책을 읽는데 도무지 생각을 해봐도 진짜 아무 의미 없는 페이지는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책에 나온 예제를 그냥 한번 따라해보기엔 완성해도 뭔가 성에 차지 않을 허접한 혹은 (내게는) 무의미한 내용이었고, 그렇다고 또 무슨 다른 끼깔나는 홈페이지를 따라 만들기엔 내 성질머리의 조급함과 모자란 실력이 모두 다 문제였던거다. 스스로가 이렇게 콘텐츠가 부족한 사람이었나, 하는 거지같은 감상과 함께 그냥 원래 있던 3번 창고 내용을 몽땅 다 갖다 옮겨놓고 시작을 했다. 간단한 메인 페이지 한 장을 따로 만들고, 몇 가지 플러그인들을 설치해보고, 아 이제는 테마를 좀 바꿔보아야지, 하는데 티스토리 시스템에 생각보다 너무 많이 적응한 이 상태로는 워드프레스에서 테마를 건드린다는게 말이 안 되는, 뭐 그런. 아아. 포기하고 그냥 적당히 예쁜 테마 하나를 골라잡고 폰트 하나만 바꾸었다. 그거 하나 하는데 오만 사방 블로그들을 다 뒤지고 스타일시트를 열어보고 뭐 하여튼.
그러다 갑자기 10년도 더 된 옛날에 정말 아무 내용도 없지만 나모웹에디터로, 드림위버로, 또 메모장에 대충 끼적거린 html 소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 진짜 밤을 새고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열심히 만들었던 제로보드는 어느새 이름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채로 워드프레스 못지 않은 CMS가 돼있었다. 그땐 html 연습할 때 table이랑 i-frame 같은 걸 참 열심히 배워다 썼던 것 같은데 지금 읽는 책에 보니 table은 더 이상 홈페이지 구축엔 쓰질 않고 본문에 있는 표를 처리할 때만 쓴다고. 말로만 듣고 IT 관련 뉴스에서나 보던, 은행사이트 들어갈 때마다 열변만 토했지 사실은 쥐뿔 모르던 웹접근성, 웹표준이 뭔지도 이제사 좀 알았고. 음. 나만 멈춰있었다 나만. 다시 워드프레스로 돌아와서 테마를 비롯한 페이지 전반을 내 맘대로 좀 바꿔보고 싶은데 그러자면 CSS를 좀 알아야 할 것 같고 PHP도 좀 배워야 할 것 같고. 분명히 퇴직하면 개강 전까지 영어 공부나 해야지 했는데 해야하는 코쟁이말은 안 배우고 안 해도 되는 웹언어를 공부하면 좋겠다 이러고 있네.
근데 간만에 일기를 이렇게 쓸데없이 길게 쓰고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