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0 꾸역꾸역 작성하던 예비답안 파일을 접어두고 누웠다. 1030 예약에 맞게 0930 알람을 두 개 맞췄지만 듣지 못했(거나 혹은 들었지만 깨지 못했)다. 1020 제대로 눈을 뜨고 전화를 걸어 예약을 바꾸었다. 잠이 깨버렸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할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배고픔에 이내 압도당할 것 같아 배민을 켜고 식사를 주문했다. 1110 주문한 메뉴가 도착했고, 식사를 했다. 밥을 다 먹고도 다시 공부할 마음은 전연 들지 않아서 결국 침대에 누워 주간문동을 읽었다. 몇 편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고, 스르르 노곤함이 다시 몰려올 때쯤 저항하지 않고 안경을 벗어버렸다.
1200 첫 번째 과목이 시작된 지 꽤 지나 눈을 떴고, 여전히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채 (내가 응시하지 않은) 첫 과목 문제를 확인했다. 대강 읽고, 이전의 노트를 잠깐 열어보았다가 다시 잠에 들었고. 1300 지난 뒤에 또 다시 한번 눈을 떠 (역시나 내가 응시하지 않은) 두 번째 과목 문제를 확인했다. 지난 여름 나를 극도의 분노로 밀어넣었던 그것. 오히려 이것이 이번 시험 중에 가장 평이했다고 평할 수 있는 문제 출제였다. 마찬가지로 대충 문제만을 읽고 잠깐 다시 눈을 붙였다. 꿈에 OJH와 JHA가 나타났고, 나는 그 잠깐의 꿈 속에서 이미 시험이 다 끝나버린 1500 이후에 눈을 떠있었다. 아주 끔찍한 악몽이었고, 1330 지나서 정신을 차려 책상 앞에 앉았다. 몇 가지 요약 파일들을 다시 보는 사이 1357이 되었고, 1400시 논자시 시작했다.
문제는 아주 당황스러운 것이었으나, 오래 당황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나 되는대로 휘갈기기 시작했다. 오픈북이어서인지, 작정하고 난이도를 부쩍 높여버린 출제자의 무자비함(…)으로 인해 문제는 예상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이렇게 문제를 두 배로 부풀릴 거였으면 시간이나 똑같이 주지, 시험시간을 반토막으로 후려친 것 치고는 꽤 난해한 난이도였다. 결국 한 문제엔 완성된 답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1459, 정해진 시각이 지나고 나니 더하고 뺄 것 하나 없이 편안하게 노트북을 접어버리고 바로 외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은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노트북을 바로 덮지도 않았고, 곧바로 외출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약간의 게으름을 피우면서 출근 준비를 했고, 홍삼스틱 하나를 후루룩 해치운 뒤 밖으로 나섰다.
오늘까지 5번을 3시간 수업했다. 늘어난 강의는 5시간이었으나 돈은 3시간만큼만 더 받기로 했다. (여기에는 내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씨의 의견이 강하게 개입되었는데, 어쨌든 수긍했다. 그만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니 21시. 길게 늘이지 않고 빠르게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EP02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깨작깨작 놀다가 편의점에 가서 맥주 8캔과 생수 6병을 사왔다. 맥주 안주로 사둔지 벌써 열흘이 지난 무뚝뚝감자칩이 오늘에서야 안주로 선택되었다. 그렇게 블랑을 비우고, 에스트렐라담을 비우고, 간간이 쪽지와 카톡들이 오가고.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았다.
20200325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근래엔 B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답지 않게 귀여우면서 담백하고, 또 동시에 성숙해서 대화가 즐거운 벗이다. 20200404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전시보다는 석파정의 한적함이 더 기대된다. 내일은 1500 예약이 있고, 그 뒤로는 좀 걸어보려 한다. 0312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의외인 듯도, 당연한 듯도. 카톡 프사를 4년 전 사진으로 바꾸고 나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이어진다. 이렇게들 한결같아서야, 원. 칭찬을 해주어야 하나.
비교적 근래에 쓴 블로그 글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3월 1일』 을 끝내지 못한 게 갑자기 마음에 걸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크롬의 이 특수문자 입력 오류는 도대체 언제쯤 수정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오랫동안 오류가 지속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쯤 되면 구글 크롬 개발자 놈들 전부 월급루팡인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자꾸만 어딘가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무엇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다. 음식이든, 술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음악이든, 어느 쪽으로든 다 마찬가지로.
피티 10회 더 끊었다. 운동이 몸에 좀 익었으면 좋겠고, 드물지만 손바닥 한 구석에 희미하게 굳은 흔적이 남을 듯 하는 그때가 뿌듯하고 흡족하다. 무게를 친다는 게 왜 즐거울까 싶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걸 가장 즐거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재일과 한승석의 자룡, 활 쏘다를 오랜만에 다시 들었고, 잘생긴 운동유튜버가 여자친구랑 꽁냥꽁냥 필라테스를 하는 클립을 하나 보고, 지금은 Finnish Radio Symphony Orchestra와 조성진이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No. 2 in C minor, Op. 18(12 Dec 2018)을 듣고 있다. 저녁 퇴근길에는 B가 추천한 José James의 앨범 ‘The Dreamer’를 들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Winterwind”라는 곡을 추천해주었고, 그 곡을 들은 뒤 앨범 전체를 들었다. 그전까진 Feist의 “Pleasure”를 듣고 있었다. 애플뮤직 계정을 미국 계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5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런 타이밍에 1년 짜리 구독이 문제가 될 줄이야.
맥주 두 캔을 비울 동안 무뚝뚝감자칩을 다 먹지 못했다. 운동하러 가고 싶다. 땀이나 빼면 좋겠다. 『장애학의 도전』도 애매한 곳에서 멈춘 뒤로 진척이 없어 계속 찝찝하게(?) 남아있다.
KDH의 경우에서나, JEH의 경우에서나 나는 실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 동시에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심정이다.
나는 그 글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Jervis가 인식과 오식이네 하는 무엇을 운운한 것처럼, 모든 이들은 자신의 입장과 판단, 사고, 신념, 믿음 따위에 반하는 정보들을 받아들이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거부한다. 나의 기억도, 너의 기억도, 온전할 수 없고 왜곡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뭐가 중요하겠는가. 정말 중요한 건 ‘정보’가 아니라 그 ‘입장’이고 ‘판단’이고 ‘사고’이고 ‘신념’이고 ‘믿음’이었을 텐데. 결국 사람들은 사실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에 누가 굳이, 익명의 카톡 아이디를 (어쩌면 새롭게) 만들어 내게 “인성쓰레기ㅗ”라며 한 마디 비명을 지르고 갔다. 바로 읽었고, 읽음과 동시에 메시지는 삭제되었다. 내가 아마 2-3년만 어렸어도, 그가 누구인지를 지금보다 훨씬 더 궁금해했었을 것이다. 그에게 내가 준 상처가 무엇이었을지를 곱씹으려 했을 것이다. 내가 대체 누구에게 어떤 못된 짓을 하고 다녔던 걸까 반성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서워했겠지, 그 상대가 나를 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그를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는 많이 닳아버린 것이 아닐까. 아슬아슬 까먹을만-하면 만나는 벗과 며칠 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많이 변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