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로 넘어가는 새벽 누워서 블로그를 쓰려다가, 써야하는 (진짜 나만 보는 그) 일기를 못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기어플을 열어 일기를 열심히 쓰다가 자울자울 잠에 들었다.
끊임없이 여러 사람과 카톡을 하고, 약속을 잡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들이킨다. 내가 어쩌다 코로나 확진자라도 된다면 이 동선 다 기억해내는 게 불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근래에 계속 생각을 했다.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 수용시설의 환경, 갇힌 자들에게 일어난 참극, 아주 드물게만 제기되고 있던 탈시설 문제,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의 장애인 관련 대책 부재,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많은 이들 중 누구에게도 편히 던지지 못하고 있다고. 오래 전 K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비슷한 느낌이 있었는데. 내가 관심있는 것에 네가 관심이 있고, 혹여 그에 관심은 없어도 적어도 나의 관심에 관심을 가져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참 힘들구나. 습관처럼 어느 기사, 어느 영상, 어느 포스팅의 링크를 복사하고 캡쳐를 한 뒤에 지금 막 대화 중이던 상대에게 보내려다가, 나는 매번 다시 멈춘다. 사람을 놓고 셈을 한다. 이 얘기를 얼마나 이해할 것인지, 얼마나 알고 있을지, 어떻게 수용할지 따위를.
며칠 전 대광어와 우럭 놓고 소맥 마시다가 상대가 말한 “장애인으로 사는 건 불편한데 나는 아니니까”(그 뒤에 다행이라 했던가, 감사하댔나, 뒤의 뉘앙스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노하느라 까먹었다.)라는 말에 좀 핀트가 나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다 하고 났는데. 상대가 “말을 예쁘게 해주면 좋을 텐데”하는 요지의 반응을 먼저 보였다. 아 또 내 말이 너무 거칠어 놀랬을 수 있겠다, 반성할 지점이 있었겠구나, 계속 내뱉은 말을 곱씹어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착하게 말하고 예쁘게 말하는 거 내 적성에 안 맞는데, (물론 당연히 착하고 예쁘게 말해야 할만한 순간에도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척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 왜 예쁘게 말해주어야 하냐고 물었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여러 사람 프로필의 구절이 떠올라 아리송.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좋다’는 말에서의 ‘예쁜 말’이란 어떤 말일까. 부드러운 말? 조곤조곤한 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말? 말투가 아니라면 내용? 살다보니 말을 정말 예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봤지만, 나는 그게 그렇다고 상대에게 요구할 만한 덕목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나도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 것이긴 하겠지)
이만큼 썼는데 또 너무 졸리다. 자울자울. 바로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