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것도 같지만. 짤릴 것 같았던 그 과외를 정말 짤렸다. 그 사람과 주고받은 문자를 여기저기 보여주고 다녔다. (그랬더니 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쓰앵님’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짤렸다. 짤리긴 했지만 후련함도 있는 것이, 또 그냥 얼마간은 예상했던 일이니,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하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한껏 짜증을 내면서) 그래서 마지막 문자는 씹었다. 그도 나름대로는 미안해했겠지. 설마 그러지도 않았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애는 모르지. 얼마간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테고.
21일 쯤에는 잠에서 꿈에 시달리다가(?) 어딘가 그 꿈의 내용을 기록해야겠다 싶어서 그걸 잠결에 메모에 적었다. 꿈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잠결에 이런 짓을 종종 하곤 하는데, 개중에서도 이번 메모는 좀 특이한 편이었다. 메모를 옮겨본다.
이상한 꿈꿨어. 상하가 아니라 평행인 엘리베이터(→이건 생각보다 꽤 자주 내 꿈에 등장한다). K 박사한테 혼났어. 행사 장소가 OOO로 확정되었는지 물어봤는데. 다른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해서. 이유는 잘 모르겠어. 나왔어 OO OOO 병원도. 아빠도 나왔어. 그 탈의실 서랍 안에서 내 옷을 꺼낸 기억도 없어. 꿈속에 나는 현실보다 훨씬 아무말을 잘했어(→이 아무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잠에서 완전히 깸과 동시에 전부 잊어버렸다). 좀 더 거리낌이 없었어. 특히 K 박사한테 뭔가 말했던 것 같애, 거슬릴 수 있는 말을. 제일 웃겼던 건 내 눈 앞에 K 박사가 앉아있고, 나는 통화를 하는데, 그 사람이 내가 어디있는지 모른다는 전제로 아니 상황 설정으로 이야기를 했어. 얼굴을 보면서. 마치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상하지.
이걸 옮겨놓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왜인지 재미있다 이번 내용은. 그리고 저 플로우는 상당 부분 그날 가야만 했던 회의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과 닿아있다.
재미있게 읽었던 디아스포라 기행의 작가 서경식의 책을 두 권 더 샀다. 크게 다르진 않지만 조금씩 다를 것 같다. 이번에도 설입 알라딘에서. 알라딘 중고매장의 쓸모를 이제야 좀 확실히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개강을 했고 나는 게으르니 언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벌써부터 첫 세미나가 지나자마자 단행본 네 챕터와 박사논문 한 챕터와 학술논문 열다섯 개가 1주일 리딩으로 주어졌다. 수업 하나에서. ㅎ… ㅎ.. ㅎㅎ….ㅎㅎㅎㅎ? (실성) 어차피 다 안 읽겠지만 왓더….?
어제는 또 굉장히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사바하를 봤다. 나는 IZE의 ‘보세! 마세! 글쎄?’ 시리즈를 좋아한다. 진짜 제목이 이렇진 않은데 하여튼 영화평을 저 셋 중에 하나로 압축해준다. 최고다. 여하간 거기서 사바하를 좀 호평을 한 편이라 기대를 했었거든. 근데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더 아쉬웠다. 뭔가 이야기가 풀어지다가 만 느낌도 있고. 수습이 안 되는 느낌도 있고. 이해가 썩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도 “공부하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 “공부하면서 만든 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장면들은 그저 장면을 위해 있는 것 같았다. 뭐랄까 예고편/포스터가 주는 호러적 갬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냥 스릴러이기만 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굳이 필요했나? 하는 요소가 군데군데 덕지덕지 붙은 느낌이었다. 즉흥으로 본 영화 다음에는 즉흥으로 고기국수를 먹었고, 그 다음엔 또 즉흥으로 와인을 마셨다. 셋이 노나먹는 와인 한 병은 정말 얼마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