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때는 내 세상의 일부가 온전히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간의 상실감과 슬픔의 수준으로 그치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 언제라도 문득문득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슬퍼할 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구보다도 외할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컸으므로. 외할머니는 곧 나를 나일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과제를 하면서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이후로 가끔씩은, 예고도 없이 두려웠다. 두려워 공포에 질렸었다.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외면도 했다. 오래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 서운해하는 할머니를 두고 부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지금에 와 사진을 찾아가며 곱씹어보니 한달, 두달 지나는 사이 할머니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보지 않으려해서 보지 못했던 것들. 2013년이 다르고, 2015년이 다르고, 1월이 다르고, 3월이, 또 4월이, 5월이, 내 생일이 다르고. 이렇게 하루한달이 달랐는데.
2018. 6. 23. 07:03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두려움도, 그 모든 것이 없을 곳을 향해 돌아올 수 없을 먼 길을 떠나셨다. 하루 전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목소리만을 어렴풋이 들으셨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하셨다. 분명.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떠나버리셨다. 떠나는 할머니는 너무도 작고, 연약하고, 마른 모습이어서, 말로는 표현도 할 수 없게 아팠다. 그 작은 몸이 남긴 자취가 이러할진대. 화장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말조차도 아팠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내내 울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울고 있다.
사망진단서를 받아들고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옮겨 깔끔하게 잘라 파일을 첨부하고, 교수에게 기한 내에 과제를 내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하는 내 앞에는, 그 와중에도, 그 정신에도, 과제를 하겠다고 챙긴 노트북과 책들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환멸을 느끼면서. 이 빌어먹을 세상에다가 엿이라도 먹이고 싶다고 되뇌면서. 핑계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러면서 정중하게 메일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이 참담한 마음을 전달해 그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할머니는 선했다. 그 버거운 인생길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나는 조금 무너졌다. 무너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