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헌가1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조 위헌제청 판결문 중 권성 재판관 별개의견

6. 재판관 권성의 별개의견

나는 주문 기재의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그 이유의 구성에 있어서는 일부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밝힌다.

가. 이 사건 법률규정의 위헌 여부에 접근하는 길은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소위 민간대체복무의 가능성을 입법하지 않은 부작위의 위헌성을 논증하고 이로부터, 민간대체복무로의 전환 가능성을 봉쇄한 채 입영기피를 처벌하는 이 사건 법률규정 또한 위헌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이른바 집총을 거부하라는 양심의 명령에 따르기 위하여 입영을 기피하는 것은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누적된 해석을 전제로 하여 그와 같은 해석이 제공하는 의미를 갖는 이 사건 법률규정이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논증하는 방식이다.

(1) 우선 첫째 방식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하여 본다.

이 사건 법률규정은 입영기피자에 대한 처벌조항일 뿐이고 현역입영의무 자체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하여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현역입영의무는 병역법 제3조(병역의무), 제5조(병역의 종류), 제16조(현역병입영) 그리고 시행령 제21조(현역병입영통지서의 송달등)에 의하여 부과된다. 그러므로 현역입영의무는 현역입영통지서의 송달과 동시에 발생하고 그 입영의무를 불이행한 때 그 처벌을 위하여 적용되는 것이 이 사건 법률규정이다. 따라서 민간대체복무 허용규정의 존재를 가정한다면 이 규정은 현역입영의무의 발생전에, 즉 입영통지서의 발송전에, 당사자의 신청, 심사와 판정 등을 거쳐 그 적용이 있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역병과 민간인은 그 신분이 서로 상이하고 또한 현역병의 복무내용(병역법 제18조 참조)과 민간대체복무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서로 상이하게 될 것이므로 현역으로 입영한 사람에게, 그리하여 현역병으로 복무할 사람에게, 민간대체복무를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현역입영의무 발생후에 민간대체복무로의 전환을 허용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이미 성립한 입영의무를 사후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이므로 이것은 민간대체복무를 허용하여야 할 사유를 ‘입영에 불응할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는 것과 실제로는 동일하고 이렇게 되면 이것은 위에서 본 둘째의 접근방식에 해당한다. 현역으로 일단 입영한 뒤에 민간대체복무로의 전환을 허용하는 규정을 만일 두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 규정은 입영 자체에 불응한 자를 처벌하는 이 사건 법률규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므로 이는 논외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민간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기로 만일 한다면 이 규정은 그 성질상 현역입영의무 발생 이전의 병역의무부과의 단계에서 그에 대한 예외적인 조치로 규정하여야 할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민간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의 위헌성이 설혹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위헌성은 일률적인 병역의무부과에 관한 규정(즉 병역법 제3조, 제5조 또는 제16조)의 위헌성을 결과할 수는 있어도 이미 성립된 현역입영의무불이행에 대한 처벌규정(즉 이 사건 법률규정)의 위헌성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첫째의 접근방식으로 이 사건 법률규정의 위헌성 여부를 논증하는 것(매), 즉 민간대체복무의 허용가능성을 입법하지 않은 부작위의 위헌성 여부로 이 사건 법률규정의 위헌성 여부를 논증하는 것은(완), 이 사건 법률규정에 대하여 그와 논리적으로 인과관계가 없는 사항을 들어 논난하는 것이어서 적절치 아니하다. 이 점을 먼저 지적하는 재판관 이상경의 별개의견을 나는 지지하고 이 점을 간과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2)다음으로 위에서 본 둘째의 접근방식에 대하여 본다.

법원의 누적된 판례에 의하면 “이른바 집총을 거부하라는 양심의 명령에 따르기 위하여 입영을 기피하는 것”은 이 사건 법률규정 소정의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규정은 이러한 의미를 이미 확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의 이 사건 법률규정이 과연 청구인의 종교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즉 위에서 말한 둘째의 접근방식에 대하여는, 아 래와 같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바 이에 대하여는 항을 바꾸어 검토한다.

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 여부

(1) 양심과 종교의 구별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시키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양심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인간을 윤리적, 도덕적 존재로 만드는 주체이고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하는 기축(基軸)이 된다. 한편 신(神)과 피안(彼岸)에 대한 내적 확신1을 의미하는 종교는 인간의 의식이 전하는 신의 가르침으로서 신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양심을 인간의 마음 스스로의 소리라고 한다면 종교는 인간의 의식이 전하는 신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양자가 일치하는 존재라고 볼 것인지 여부는 보다 높은 차원의 별개의 문제이고 일응 현상계의 문제로서는 양자가 위와 같이 그 범주를 달리 하여 구별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구별은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따로 구별하여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2 양심의 소산(所産)으로서의 신념과 종교의 소산(所産)으로서의 신념은 많은 경우 결과에 있어서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자는 분명 그 출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를 사실관계에 비추어 분석하여 보면 이는 청구인이 신앙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에서 비롯된 종교상의 신념에 해당한다(청구인 제출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 제1면 1. 사건의 개요란에 의하면 청구인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투철한 종교적 양심에 따라 소집에 응하지 아니하였다고 주장한다). 청구인의 주장은 그 내저(內低)에 있어서 분명히 신의 소리, 신의 가르침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 있어서의 문제를 종교상의 문제인 동시에 양심상의 문제로 파악하고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위하여 양심의 자유를 중심으로 검토를 한다고 설시한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양심의 소산과 종교의 소산이 비록 동일한 외형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저에 있어서 그 기초하는 바의 연원(淵源)이 다른 이상 양자를 같이 볼 것은 아니다.

(2)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이 사건 법률조항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먼저 본다.

(가)우선 청구인이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 종교상의 신념 내지 종교의 교리로서 과연 올바른 것인지 여부는 따질 일이 못된다. 무소불능(無所不能), 무소부지(無所不知)의 완전한 존재임을 전제로 하는 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유한의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 내용의 당부를 따진다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국가불개입의 원칙은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인 인류의 지혜를 반영한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는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에 속한다.

(나)그러므로 헌법재판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종교상의 신념 내지 종교 교리의 내용이 정당한 것인지 여부를 따지는 일은 아니고 오로지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현실적으로 수용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한정된다. 이 문제를 바꾸어 말하면 종교의 교리 내지 종교상의 신념을 표명하는 행위(교리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회적 파장을 결과하는 행위이므로 이는 법률에 의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규제는 기본권제한의 문제가 되어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되게 된다.
헌법 제37조 제2항 소정의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와 헌법 제39조 소정의 국방의 의무와의 관계에 대하여는 뒤에서 양심의 자유를 논의할 때 검토하는 바와 같다.

(다)이러한 논리의 맥락에 따라 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보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제5조 제1항) 아래에서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위한 집총까지를 거부하는 것은 그 사회적 파장을 우리 헌법질서에서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안보상황, 징병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집총거부를 허용하고 그 대안을 채택하는 데 수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약적 요소 등을 감안할 때, 집총거부를 허용하더라도 국가안보라는 중대한 헌법적 법익에 손상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총거부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남북한 사이에서만이라도 평화공존관계가 정착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부국강병이 필요 없는 국제적 안전보장질서가 조성중에 있어야 하는데 현 단계는 그러한 여건의 충족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종교상의 이유에 의한 집총거부를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의 하나로 삼지 아니한 입법자의 판단(및 법원의 누적된 해석)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거나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소위 종교상의 신념에 따른 집총거부를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의 하나로 보지 않는 것은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청구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다. 양심 자유의 문제

청구인의 집총거부가 신의 소리에 응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응한 것이라고 가정할 때의 문제를 마저 검토한다.

(1)종교상의 신념이나 교리가 신의 소리라고 한다면 양심의 소리는 인간의 소리로서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윤리적 결단의 표명이다.

신의 소리에 대하여 인간이 그 내용의 당부를 따질 수는 없고 단지 그 사회적 파장의 현실적 수용가능 여부가 기본권제한의 문제로서 헌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이다.
이에 반하여 양심의 소리는 인간의 소리이므로 그 내용의 당부 즉, 그 정당성 유무를 당연히 따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양심의 소리가 내심에 머물러 있는 단계라면 그 표명을 강요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절대적 자유로 보장되어 비판에서 제외되지만 일단 표명되어 공개되면 비판에서 면제될 수 없다. 표명된 양심은 이미 자기만의 것이 아니고 자타(自他)가 사회적으로 관계하는 객관적 존재가 되므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종교의 소리가 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비판되는 것 이외에 인간의 소리로는 비판될 수 없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2)양심의 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언어적 표현 이외에 행동에 의한 표현도 가능하다. 또한 표현은 점수적 궁리(漸修的 窮理)의 발현일 수도 있고 돈오적 즉발(頓悟的 卽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양심실현의 행위는 양심 표현의 한 태양으로서 자타(自他)가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객관적 존재가 되므로 양심실현의 자유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3)비판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편타당성이다.

양심의 소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윤리적 결단의 소산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여야 하고 따라서 인간의 이성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말한다면 비록 현재는 보편타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획득의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한다.
보편타당성의 획득계기는 무엇인가.

학문이나 사상과 달리 양심은 윤리적 결단의 본체이므로 그 보편타당성의 내용은 윤리의 핵심 명제인 인(仁)과 의(義), 이 두가지로 집약된다.

시대와 사람에 따라 접근방식과 표현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의 본성이 지향하는 선(善)의 구체적인 표지가 인(仁)과 의(義), 이 두가지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仁)과 의(義), 이 두가지는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고 인간을 윤리적 존재로 만드는 소이연이다. 그러므로 인(仁)하고 의(義)로운 행위는 보편타당성을 획득하고 그렇지 못한 행위는 보편타당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仁과 義의 이 사건에서의 의미는 뒤의 (6)부분 참조〕
양심의 소리가 보편타당성이 있는 것이면 그 양심의 소리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절대적 보호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양심의 소리가 보편타당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 사회적 파장이 비록 현재의 실정법질서에서 곧바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을 적용하여 이를 규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편타당성은 양심의 자유의 내재적 한계가 된다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가 보편타당성이 없는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우선 이 경우에 그 사회적 파장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라면 비록 그 내용이 부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헌법 제37조 제2항을 적용하여 규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범위의 것은 관용의 대상이 된다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반면 보편타당성이 없는 양심의 소리가 결과하는 사회적 파장이 헌법질서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헌법 제37조 제2항을 적용하여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양심의 소리는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구별되어 헌법상의 보호를 받는다. 첫째로 내심적 존재인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보호된다. 즉,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둘째 표현된 양심의 소리가 보편타당성이 있을 때에는 역시 절대적으로 보호된다. 그러므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서도 이를 제한할 수 없다. 즉,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셋째 표현된 양심의 소리가 보편타당성이 없을 때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된다. 그 결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고 그러한 필요가 인정되지 않으면 이를 제한할 수 없게 된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위와 같이 단계별로 파악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의 중요성에 걸맞게 이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종래의 견해에 따르면 대체로 내심적 단계에 머무르는 양심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결과가 되었는데 위에서 본 단계적 보호의 견해에 의하면 내심적 존재인 양심 이외에도 표현된 양심으로서 보편타당성이 있는 것 또한 절대적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의견이 취하는 바와 같이 양심의 자유가 국가에 대하여 소수자의양심에 대한 관용을 촉구하고 관용을 위한 배려의무를 부과하는 정도의 것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별 내용과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만다. 이는 양심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내세우는 것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그러므로 보편타당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하여 양심의 자유에 대한 보호의 두께를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보편타당성의 판단은 두 곳에서 행하여진다. 하나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의 시장이다. 양자의 판단은 상호존중적이어야 하되 사실상 상호침투적일 수밖에 없다.

(4)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 등은 그 뿌리를 모두 인간 내심의 정신적 작용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므로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위에서 논의한 바는 대체로 학문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에 대하여도 그대로 타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의 방편으로 갈리레오의 지동설에 대한 중세의 종교재판을 오늘의 헌법재판으로 번안하여 본다면 지동설은 윤리와 도덕의 범주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우선 양심의 소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신의 소리를 전하는 것도 아니므로 종교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자연과학이라는 학문 및 이에 기초한 철학적 사상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지동설의 표명은 학문 및 사상의 자유에 속하고, 그 내용이 보편타당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이는 절대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중세의 종교재판은 지동설과 천동설을 종교의 문제로 본 데서 잘못되었고, 지동설의 보편타당성을 이성으로 검증하지 않고 추상적 독단으로 이를 배격한 데서 또한 잘못되었으며, 피고인을 위협하여 지동설의 부인을 강요한 점에서 더욱 잘못되었다. 당시의 사회일반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재판관들의 소양에 비추어 볼 때, 지동설의 보편타당성을 검증,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역사적 교훈이 도출된다. 양심, 학문, 사상 등의 문제에 관하여 보편타당성을 검증할 때에는 장래에 전개될 수 있는 인간 이성(理性)의 계몽 및 학문의 발전과 사회의 진화를 감안하여, 이를 부정함에 있어서 신중을 요하고 설혹 이를 부정할 경우에도 그것이 장차 보편타당성을 획득하게 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그 제재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관대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법원의 재판에 있어서 고려될 수 있는 사항의 하나일 것이다.

(5)헌법상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양심의 소리는 위에서 본 것처럼 그 내용에 보편타당성이 있는 것 내지는 보편타당성의 획득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에 한정된다. 또한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 형성과정에서의 진지함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결국 그 형성과정의 진지함과 내용의 보편타당성, 이 두가지가 양심의 소리에 대한 헌법적 보호의 요건이 되는 셈이다.

형성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예컨대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생긴 것 등은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형성의 진지함은 양심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의 자유와를 구별짓는 한 단서가 된다. 자기 정체성의 표현을 의미하는 고도의 결단, 지행합일의 의미를 갖는 고도의 결단, 희생을 수인하는 결단, 이러한 진지한 결단에 연유하는 것이라야 양심의 표현에 속하고 불연이면 일반적 행동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6)이 사건에 돌이켜 보면 부당하고 불의한 침략전쟁을 방어하기 위하여 집총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윤리적 결단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국토와 헌법을 수호하고 자기와 자기의 가족 그리고 자기의 사랑하는 이를 살상하는 침략에 대항하여, 그리고 대항할 준비를 위하여, 집총을 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명하는 바라 하여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이를 크게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식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이성이 합리적으로 사유할 때 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바이다.

자기의 부모, 형제, 처자가 살상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이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어 인(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러한 살상을 보고도 분기하지 않는다면 이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어 의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다른 사람의 수고와 희생의 결과로 얻어지는 안전을 누리기만 하는 것은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는 것이니 이는 예(禮)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침략의 위험이 목전의 것이 아니라 하여 이를 외면한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이처럼 의심스러운 행위는 그 보편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침략전쟁을 방어하거나 방어를 준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집총을 거부한다는 것은 보편타당성을 가진 양심의 소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율곡 이이가 외적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임진왜란의 발발 10년전인 1583년에 10만 양병을 주장한 것은3 율곡이 양심이 없었거나 호전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고 오늘날 국민개병의 기치 아래 많은 청년이 군에 입대하여 희생을 견디며 집총을 하는 것도 그들이 양심이 없거나 호전적이어서 그러한 것은 물론 아니다.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집단을 진압하기 위하여 U.N.이 평화유지군을 투입하는 것도 양심이 없거나 전쟁을 즐겨서 그러는 것이 물론 아니다.
그러므로 방어용의 집총까지를 거부하는 것을 보편타당한 양심의 소리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미래를 헤아려 보더라도 적어도 상당한 기간 결론은 동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집총거부행위는 비록 그것이 양심의 소리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요구된 집총이 아닌 한, 보편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헌법상의 보호가 제한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7)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와 헌법 제39조의 국방의무의 관계

양심의 자유에 대한 단계적 보호를 위에서 논하면서 보편타당성이 없는 양심의 소리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가 쟁점이 되고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상의 필요라는 문제는 일단은 쟁점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헌법 제37조 제2항 중 국가안전보장이라는 사항에 한정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양심의 소리를 제한하려면 우선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필요성이 인정되고 이어 그 제한의 내용이 법률로 규정되어야 한다. 기본권제한의 통상의 경우라면 기본권제한의 내용이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성이라는 것까지도,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함께 법률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제39조가 규정하는 국방의 의무 내지 병역의 의무라는 것은 본질에 있어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에 응한 것이고 한편 모든 종류의 의무의 이행은 본질에 있어 불가피하게 권리의 제한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이 제39조에서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병역의무의 이행에 수반되는 기본권의 제한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헌법 스스로 인정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병역의무의 부과 및 그로 인하여 야기되는 기본권의 제한에 관한 한,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성이라는 것은 법률에 규정할 것도 없이 이미 헌법 자체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여 이를 규정하고 있는 것(헌법유보)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성이라는 것은 이미 헌법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새삼 그 유무를 다시 논의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편타당성이 없는 양심의 소리에 대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남은 문제는 그 제한의 내용이, 즉 이 사건의 경우로 말한다면 양심상의 집총거부를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의 하나로 삼지 않은 것이,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의 본질은 우선 양심의 자유로운 형성과 그 자유로운 표현(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규정은 양심의 자유로운 형성과 표현에 간섭하는 내용의 규정이 아니다. 다만, 청구인이 주장하는 내용의 양심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국가가 수용하지 않는 것 뿐이다. 이 규정이 청구인을 처벌하는 것은 청구인의 양심표현을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효과가 물론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간접적 억제가 양심의 자유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처벌은 양심의 내용이나 표현을 문제삼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위가 국민 일반에게 부과되는 다른 차원의 법률상 의무에 객관적으로 위반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규정은 청구인에게 외형적인 복종을 요구할 뿐 청구인에게 그 양심의 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거나 복종의 당위성에 관한 내적확신까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4 그러므로 이 규정은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위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가를 포함한 병역의무의 전반적 내용은 국방의 필요를 합목적적으로 달성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본권이 합리적으로 보장되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의회가 재량으로 결정하여야 할 사항이다. 이렇게 볼 때 양심상의 집총거부를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의 하나로 삼지 않은 이 사건 법률조항이, 앞의 ‘나. (2) (다)’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의회의 재량권한을 현저히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상 이러한 측면에서도 이 규정이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또 하나 남은 문제는 집총거부에 대한 법률상의 제재가 징역이라는 형벌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이 과잉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이것 또한 입법재량의 문제로서 현저한 재량일탈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위헌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8)결론컨대 청구인의 집총거부가 그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응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 양심의 소리는 보편타당성이 없으면서 반면 이를 수용하여서는 아니 될 국가안전보장상의 필요가 있으므로 비록 이 사건 법률조항의 의미하는 바가 청구인의 양심상의 집총거부를 입영기피의 정당한 사유의 하나로 삼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할 수는 없다.

라. 의회에 대한 권고의 문제

민간대체복무의 검토 등 입법개선의 필요여부에 대한 의회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다수의견의 권고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적절치 않고 오히려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 허영, 한국헌법론, 박영사, 2003, 신3판, 378, 388, 389면; 권영성, 헌법학개론, 법문사, 신판(98년판) 329면; 김철수, 헌법학개론, 박영사, 2004, 제16전정신판, 652면; 계희열, 헌법학(중), 박영사, 2002, 보정판, 305면;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 2004, 제4판, 343면
  2. 허영, 앞의 책, 378면; 김철수, 앞의 책, 665면; 계희열, 앞의 책, 319면; 권영성, 앞의 책, 334면.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역 율곡전 서 〔VII〕권 34 부록 〔2〕, 1988, 109면
  4. 허영, 앞의 책, 387,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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