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KB 책모에서 읽었다. 2023.1.11. 완독
전체적으로 좀 귀엽고 웃기게 읽었다. 안 웃긴 부분도 물론 있었음. 굳이 이렇게까지? 싶은 부분이 꽤나 있었고.. 책모에서 얘기하면서 좀 더 명확해지기도 했다. 혹자는 너무 극딜을 해서 외려 좀 쉴드를 치고 싶어지기도 했는데. 요는 본인은 한국식 가부장제 하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정말 가(부/녀)장이라면 이래도 되는 거냐? 너무 불쾌하고 대단히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하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 명확하고도 단언적인 말이 오히려 ‘한국식 가부장제’ 하에 살아가는 모든 비-가부장들에게 너무 거칠게 다가오는 화법이어서 그랬달까.
책을 읽기 전에 중년 남성이 추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조신함이다 어쩌고 이런 걸 운운하는 그 부분 인용문을 소셜에서 먼저 봤는데, 이게 그렇게 뚝 떼놓고 읽었을 때의 감상과 전혀 다르게 소설에서는 공감해주기 어려운 맥락 속에 놓여있었다. 아 좀 멀리 가네.. 이건 안 웃긴데.. 싶은 그런.
책모의 다른 이들도 많이 공감했듯이, “가장”이라는 컨셉을 타파하거나 극복한 게 아니라 ‘부’의 자리에 ‘녀’를 넣음으로써 발생하는 위계의 전복이 끝일 뿐이었다. 그 이상을 꼭 그녀에게 요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마음은 없지만, 이게 알고도 한 의도였는지, 알고도 넘을 수 없는 한계였는지, 몰라서 생긴 부족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가 경험한 가부장이 다 달라서, 해석과 독해가 모두 이렇게나 다르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쉽게들 ‘가부장제’라고 퉁쳐서 말하지만, 실상 각 가정의 가부장제는 각 가정의 수와 각 사람의 숫자만큼 다종다양하다는 것. 그래서 모두 다 자기의 경험대로 비판의 각을 재고,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 지점들이 다 다르다는 것. 이걸 너무 간단하게 ‘가부장제’라고 환원하는 언어에도 한계가 크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됐든 까려면 촘촘하고 확실하게 조목조목 두드려 패야 하지 않겠는가.
나처럼 남궁인 작가와의 서간문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았고, 특히 개중에 남궁인 작가에게 참 자기만 안다는 맹렬한 비판을 상당히 유쾌하게 직설적으로 했던 작가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작품은 어이? 그쪽이 한 수 위잖아?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 이것도 본심이 좀 궁금했던 지점.
순문학/등단문학 얘기하는 부분도 ‘그간 내가 생각했던 작가의 이미지’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아서 신기했음.
어쨌거나 그녀는 아주 사랑받고 있다. 그걸 자랑하려고 쓴 책 같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 혹은 글 속의 슬아가 계속 말하는 것처럼 슬아의 모부만큼 슬아의 필요와 욕구를 알맞게 채워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다 떠나서 보면 ‘우리 모부는 이렇게나 훌륭합니다’ 같은 그런 글이 아닌가… 누구는 꽤나 불편하기도 했다지만 어쨌든 그 모든 관계에는 아주 녹진하고 뿌리 깊은 애정과 존경, 사랑, 애틋함 같은 것들이 찐득찐득 묻어난다. 그들의 대화가 유머가 될 수 있는 건 그래서이다. 그래서 더욱 판타지스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이게 ‘소설’이냐는 것을 나름 중요하게 질문하는 게 새삼스러웠다. 학교도 졸업하고 수능도 다 친 지가 언젠데 문학을 그렇게 교과서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정도가 내 느낌의 전부. 굳이 더 덧붙이자면 그러고도 문학을 더 공부했든가, 문학을 계속 삶에 끼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구분이 흐려지지 않나? 싶은 의문도 들었고. 근데 난 어차피 문학 잘 모른다. 모르면 용감한 법.
근데 그래도 지금처럼 계속 실눈을 뜨고 보긴 하겠지만..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궁금함은 남아 있다. 아주 뚝딱 읽혀서 가볍게 읽기도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