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감독전

  •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 2022년 11월 6일, @아트하우스 모모
  • <디어 평양> (2005) & <굿바이 평양> (2009), 2022년 12월 11일, @인디스페이스(홍대 롯데시네마 8F)
  •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2022, 마음산책) ­― 2022. 12. 15. 완독

가장 먼저 접한 게 그것이라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가장 먼저 보게 됐는데, 모두 다 보고/읽고 나니 전작들과 책까지 모두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만 본 채로 멈췄더라면 내내 오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이라든가(<언어의 감옥>이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는 사놓고 못 읽은 게 족히 반 년은 지난 듯하다 흑흑…), 이범준 선생의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라든가, 조경희 선생님의 여러 발표들이라든가, 좀 더 재미없게는 이원덕 선생의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이라든가… 여하튼 자이니치의 문제는 항상 묘하게 눈에 좀 (많이) 밟히는 느낌적인 느낌 같은 게 있었는데… 내 경로를 짚어보자면 고등학교 시절 국사/근현대사 교육에 이어서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 얽힌 민단-총련의 갈등을 접하게 되고, 북송 사업이라든가 납북이라든가 북일정상회담 같은 사건들을 대강 알게 되고, 이후에서야 ‘조선적’과 ‘한국적’과 ‘일본적’의 구도를 어렴풋이 알게 됐고, 경계인/난민으로서의 그들의 삶이라든가 국가 밖의 민족으로서의 ‘재일’이라는 위치가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개인)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자원(? 이라고 말하면 너무 착취적인 것 같기도…)이라고 생각하는 정도… 사실 그냥 잘 모른다는 얘기임.

어쨌든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제일 먼저 접하고서는 애니메이션에 좀 충격을 받았고요… 네 정말 너그럽게 보려고 해도 제 미감과는 맞지 않았고요…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동안에의 4.3에 대한 서술도 너무 듬성듬성한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훨씬 더 어려웠던 것은 ‘묻는 자들의 태도에 관해’, 그리고 ‘듣는 딸의 태도에 관해’ 생기는 거부감 같은 게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엄마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 오해가 컸었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엄마를 이해하고자 했던 딸의 이야기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나니 좀 해소된 부분이 있다.

<디어 평양>에서는 확실히 아버지의 캐릭터가 정말 독특하고, 개성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뭔가 감독이 걱정한 것처럼 “오오, 그렇군. 역시 사고방식이 다르네. 이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어”(책 84쪽)라는 생각은 오히려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인데, 나는 양 감독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를 꽤나 많이 겹쳐 두면서 영화를 본 듯 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양 감독의 태도가 내가 생각하는 혹은 상상하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거칠다는 느낌이랄까…?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도 그렇지만, <디어 평양>에서도 왜인지 모르게 감독은 자꾸만 엄마와 아빠를 채근하는 듯한 화법을 자주 사용한다. 자유로운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의 소통을 위한 도움(?)이라고 하기엔… 왜인지 마이크를 대고 바짝 붙어서 대답해 달라고 (조금은 힘을 실어서)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계속해서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또 하나의 부분이었는데. (나는 원체 어려운 말을 할 때에는 뜸을 자주 들이고 하나의 말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자제해서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게 또 어쨌든 결국엔 어떠한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어떠한 대답들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거꾸로 딸이면서 동시에 감독으로 존재해야 했던 상황의 어려움이 묻어난 결과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말/행동 중에 강하게 남았던 부분.

  내가 세게 나가자 아버지는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외쳤다. “나를 위해서라니!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 마라!”

  그날도 아버지가 “이제 됐어. 죽여줘”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무슨 바보 같은 말인지 원”이라며 세탁물을 들고 병실 밖으로 갔다. 아버지는 “왜 못 죽게 해. 이런 몸이 됐는데 어째서 죽으면 안 돼”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 흥분해서 심각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영희가 아버지! 하고 부를 사람이 없잖아. 그럼 내가 쓸쓸해. 영희 아버지는 하나뿐인데, 다른 사람은 될 수 없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 그러니까 영희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요.”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버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그렇구나, 알았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었다. 수년간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분출하는 듯한 소리였다. 나도 함께 소리 높여 울었다.

책만 빼고 영화 세 편을 모두 B와 같이 봤는데, 영희가 엄마의 소포와 송금에 대해 갖는 불만과 부담을 내 쪽에서 좀 더 공감했었다. 이건 사실 그냥 일본에 남은 가족과 북송된 가족들 간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숱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왔던 여러 다른 여성들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보다 솔직한 양 감독의 변명(?)을 읽을 수 있어 이 역시 다행이었다. 여하튼 꼭 순서대로 봐야 할 것까진 아니지만, 일단 볼 거라면 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책까지 읽으면 더 잘 완성된다는 생각.

<디어 평양> 상영 후 무비톡 때 말이 정말 정말 많으셨고… 덕분에 사인본 도서에 이름까지 받지는 못했지만요… 영화인 양 감독 모먼트가 찐으로 느껴지는 무비톡이었습니다… 선화는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요. 외교관 같은 거라도 됐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부디 잘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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