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유해정·이호연, 『나는 숨지 않는다』, (2020, 한겨레출판)
20221217 토요일 밤 완독. 2장 제시 킴 – 4장 김복자 – 5장 김예원 – 1장 유지윤 – 3장 임경미 – 6장 묘현 – 7장 라원, 유경, 윤, 이황유진, 혜의 순서로 읽었다.
제시 킴의 이야기는 그가 비판하는 것 같은 종류의, 판에 박힌 정치적 대상화라든가 섹슈얼리티의 착취나 오용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좀 특별하게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담담하면서도 대담한, 어떤 힘이 느껴지는 게 좋았음. 그가 활동하는 단체가 “한국에서 북한인권단체로 소개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점이 극히 이해가 되면서도, 또 역시 “제시 킴”이 되어 살고있다는 것이 묘한 감상을 남기는 부분.
김복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성질을 더 죽이면 못 살지”라는 거창한 소제목에 비해 성질이랄 게 별로 없는 순한 사람 같아서 의외였음. 이와 별개로 정말… 어떻게 감히 감당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이 분 삶의 궤적이 너무 화가 났던 부분. 요며칠 5060 남성의 압도적인 고독사 비중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는데, 이렇게 남들은 뭐 상상조차 잘 못하는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도 여기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같이 읽을 글들.
- 조문영 <빈곤 과정>
- 김수현 <가난이 사는 집>
- 최현숙 <황 노인 실종사건>
- [홈리스뉴스 107호] 여성 홈리스 특별판 (stibee.com)
- 들불레터 64화, 황 노인 실종사건 (stibee.com)
예원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성 청소년의 탈가정 경험’이라고만 말해서는 그 내용의 반의 반도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집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주변 친구들 보면 주거가 없거나 사는 집이 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월세가 밀리면 부담감과 조급함으로 불안해지고 돈이 없는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거죠. 집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할 여지가 생기고 일자리를 알아볼 힘을 낼 수 있고 돈이 생기면 주거를 유지할 수 있어요. 건강해지는 과정인 거죠.” [209]
이건 결국 3n살 내가 지금 하는 고민과 한 톨도 다르지 않은 것. 예원이 지적하는 것처럼 “어른도 혼자 살면 생활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매일 친구들 데리고 와서 술 먹고 생활이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 점. “청소년에게 주거를 지원하면 범죄를 저지르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데 사실 어른들도 그럴 수 있”다는 점. 그러니까 결국은 강제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억압이 가해지고, 보호할 이유조차 없다고 여겨지는 저소득/빈곤/미자립 성년들은 미친 집값, 돌아버린 부동산 시장에 내던져놓는 게 지금 이 사회가 하고 있는 전부가 아닌가?!
유지윤은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면서 읽었고. 임경미 글 역시도 그랬다. 비마이너 시리즈도 자주 떠오르고. 나는 장애운동판을 정말 하나도 모르지만, 비마이너의 사람 연재는 정말 엄청난 구술이자 역사이자 운동이다. 늘 감탄함.
묘현의 글을 읽으면서는 마침 어제 저녁모임에서 듣고 왔던 변시 오탈 후 많이 아프게 되어버린 모씨의 이야기가 떠올라버렸다. 묘현이든 그든, 부디 오래 건강하기를.
한참 이슈가 생겼을 때조차도 스쿨미투에 관해서는 다른 것보다 관심을 두지 못했었는데, 마지막장 읽으며 이랬었구나 그랬겠구나 그러면서 읽음. 학교가 많이 바뀌었네 어쨌네 하지만서도 여전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고 변화하기 어려워 보이는 지점이 많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하게 지나가는 게 상책이지, 하는 그런 태도 한국에서 학교 다니며 누군들 안 겪어 봤을까? 여기까지 밀고 나온 이들의 힘이 대단하기도 하면서, 이게 또 벌써 2년 전의 이야기이니 그 사이엔 어떤 변화들을 겪었을까, 해당 학교들은 한 치라도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염려가 떨쳐지지 않는 건 기우만은 아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