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안에 잡아먹히기 일보직전인 것만 같은 날이다. 가장 단순한 거주 공간의 안정, 밥벌이의 안정, 자기실현의 안정, 어느 것 하나 성에 차지 않은 시간이 너무 오래도록 계속된 느낌이다. 계속 붕 떠있는 듯한.
아침에 늦잠을 좀 자는 바람에 1교시 수업에 늦었다. 내가 선생이 아니길 망정이지. 꾸역꾸역 참는 느낌으로 4교시를 다 끝냈다. 조만간 시험 준비도 해야 하는데 너무 오랜이라 좀 어색하달까.
드디어, B와 <보통 일베들의 시대> 같이 읽어요 시간을 가졌다. 빠진 기록이 없다면, 8월 6일에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를 읽고 무려 세 달만이다. 책은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일베도 이제 약간은 철 지난 얘기가 돼버린 면이 있는 듯하다. 책 나올 때에 비하면 요즘은 준스톤도 존재감이 거의 소멸 수준에 가깝고… 그치만 뭐 이게 꼭 일베’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계속 읽힐 수 있겠지. 책은, 알던 내용도 있었고, 몰랐다가 알게 된 내용도 있고, 알았어도 이렇게 읽어낼 수 있다는 걸 새롭게 발견한 부분도 있고.
친절함의 방법에 관해 예상 외의(?) 논쟁이 있었는데(feat. “도덕적 우월감과 자기애”), 언어의 불일치가 빚은 오해 더하기 감정-관계의 상호성에 대한 태도의 불일치를 확인(?)했다. 어쨌든, 다정과 친절에 대해, 생존-필승 전략으로서의 (남성) 페미니스트 되기에 대해, <에.에.올>의 메시지에 대해, 얼마 전 책모에서 이야기 나눴던 운동/활동들 사이의 불화와 경쟁, 희생-죽음과 생존-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252쪽에 ‘젊었을’을 ‘젋었을’로 잘못 쓴 오자가 있다. 334의 “‘트페미’로 대표되는 영영페미니스트의 저항적 담론 역시 기실 능력주의적 토대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 … ‘공부하지 않은’ 남성들의 ‘무지’를 멸시하는 능력주의 전략을 취했다.”라는 언급은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