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폭력에 관하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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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런 와중에 지식인들 중에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는 유일한 목소리를 낸 것은 발리바르였다. 그는 이번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대리전(proxy war)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측의 저항을 정당한 전쟁(just war)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한 어조로 주장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발표하는 여러 편의 글과 인터뷰에서 발리바르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아포리아를 있는 그대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즉 우리는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권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 즉 미국과 나토의 탐욕을 강화하거나, 푸틴의 핵사용 가능성을 고조시키거나, 우크라이나에서 극우세력의 헤게모니가 강화될 위험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한쪽을 지지하면서도 그 내부 모순에 대해 비판하고 거리를 두는 입장을 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현실에서 어떤 실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전쟁과 학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발리바르의 또 다른 명제인 반폭력의 정치는 바로 이 지점을 사유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초주체적 폭력은 이를테면 러시아의 부차 학살을 비롯한 점령자들의 행위에서 쉽게 나타나지만, 침략에 저항하는 군대 역시 폭력의 과잉화와 극단화로부터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발표자가 말한 ‘폭력의 통제불가능성’은 이에 상응하는 관점으로 보인다). 독립을 위한 저항적 전쟁수행의 정당성과 별도로, 그것의 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확전을 막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단일민족성을 강조하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헤게모니를 저지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와도 대결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가 최소한의 반폭력의 정치(이것이 최소한인 이유는, 그러한 노력이 희미하고 미약한 힘일 것이기 때문이다)를 수행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