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 그가 떠나가고

20191202. 17시 경이라고 들었다. 길어진 세미나에 17:27 카톡으로 보고, 이내 세미나가 끝나고, 전화 한 통을 하고, 사무실에 가 앉아서 일을 하면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얼추 시간 맞춰 체육관에 가서 사물함 짐을 빼고, 쇼핑백을 쟁여들고 차에 올라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영정사진 달랑 하나 세워진 상황이라 이리저리 정신없던 차에, 장례식장에서 주는 한복 상복을 입네 마네 하는 걸로 트러블이 났다. 한복 입기 싫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안 입었다. 어차피 다 검은 옷이고, 유가족 표시는 리본을 달고 있으니 된 것 아니냐. 입어라.  가족 다같이 입는데 그거 입는 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처음으로 한 마디 하는 거다. 입어라. 공동체가 어쩌고. (일장연설을 해댔는데 뭐라고 떠들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나네) 그리고 끝내 화를 이기지 못한 그녀의 “싸가지 없는 자식들”이라는 일갈. 나는 결국 10시가 되어 식장을 나서기 전까지 망할 상복을 입지 않았다. (없는) 연구실 핑계를 대고 나왔고, 신림에 갔다가, 어줍잖은 또라이 하나를 잘못 만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서 가만히 앉아 회차지점을 돌고, 자정이 넘은 무렵 집에 도착했다. 화요일 연구실에 나가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뭉개고 뭉개다가 결국 가지 않았다. 수요일 점심까지 동네에서 먹고서야 다시 병원으로 갔고, 나는 결국 그날도 상복을 입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가 상주방에서 내내 세미나 운영 보고서를 작성했고, 월요일 세미나 녹취도 풀었다. 밤이 깊어서는 정산과 계수. 4758. 새벽 두어시 잠시 J동. 두어 시간 호흡곤란에 시달리며 자고 일어나 신새벽 천변을 달려 다시 병원. 발인예배. 영정은 D의 손에. 그리고 화장터로, 납골당으로. 대절차량 기사가 소개해 준(리베이트를 받았을 것이 분명한) 어느 식당에 가서 점심. 헤쳐모여 각자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거쳐 J동. 한숨 자고. 다시 D동. 잠깐 눈 붙일 새 없어 옷만 대강 갈아입고 출근. 장사는 더럽게 안 되고 몸은 무거워 출근 세 시간여 만에 퇴근.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