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31. 왜 그걸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꼭 마치, 남의 로맨스의 시작을 구경하는 것만 같아서, 그 몇 줄 안 되는 글을 이상하게 자꾸만 보게 되는데, 이게 뭘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읽었을 땐 그냥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고. 그래서 다시 또 그 옮겨 적은 대사를 보러 들어갔다가 바뀐 내용을 보고, 이상하게 뭘 훔쳐보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돼버려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근데 왜 그러고도 또 가서 들여다보게 되는 걸까. (물론 나는 지금 nn일째 공부가, 과제가, 리딩이, 글쓰기가 하기 싫은 상태니까 어쩌면 그것은 당연지사일 수 있지만)

편지를 써야하는데 자꾸자꾸 시간이 흐른다. 남기지 못한 말들이 계속해서 흩어진다. 가을이 왔다고 편지를 쓰지는 못할 망정, 마음 한 자락 전하기가 이렇게나 힘이 겹다. 과제 쓰는 건 끔찍해도 편지 쓰는 건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해도 괜찮을 시간을 달라 나에게.

어제 밤 또 다시 울고 싶은 심정으로 연구소 문을 나서는데 친구등록도 안 해놨던 모 선배가 카톡으로 기프티콘 한 장을 보내왔다. 페북 글을 보고 왠지 그냥 주고 싶었다고. 남 얘기 같지 않아서. 혼자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한 시간의 티타임을 선물한다고. 따뜻한 차 한 잔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오, 세상에. 남자였으면 최소 5분 쯤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거다. 가끔은, 저 사람은 너무 착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어느 선을 넘어서는 가까워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도 얼마간은 그런 사람에 속했는데, 이렇게 적시적소에 꽉찬 진심이라니. 어딘가 두드려맞는 느낌이 들면서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놀라 급하게 다다닥 보내버린 답장이 성의가 없게 느껴졌을지 어쩔지는 모르겠다, 이야기를 더 나누지 않았어서.

의외의 생이 나를 위로하고, 의외의 순간이 나를 구원한다. 

댓글을 답시다 두비두밥